조언과 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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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과 간섭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0.12.08 13:45
  • 호수 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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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
서울교사회장

백화점 한 코너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기껏 생각해서 말해주었더니 저러는 것 좀 봐.” “내가 입을 내 옷이라고, 제발 참견하지 마시라고요.” 아마도 옷을 고르다가 두 모녀가 싸우는 모양이다. 엄마와 딸이 지금 입고 있는 옷만 보아도 서로 간의 갈등과 긴장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껏 시간 내어 옷 사는데 따라와 조언까지 해주었건만,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아이의 짜증에 엄마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야, 내가 남이냐?’ 잠시 엄마의 언성이 높아지다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둘은 자리를 얼른 피한다.

경우와 정도는 다르겠지만,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화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일상적 대화에서 말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에서 비롯되는 조언이고 권고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간섭이고 참견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조언이라는 명분으로 상대방의 문제에 불쑥 끼어든다. 상대는 들을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훅’ 들어가는 것이다. 궁금해서 손톱만큼 물어보았는데 오지랖 넓게 몸뚱이만큼 알려주려고 남의 아까운 시간까지 다 빼앗는 경우도 있다. 믹스커피가 떨어져서 옆 부서에 가서 빌려달라고 했더니, 커피가 우리 몸에 안 좋은 이유에 대해 10분 동안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커피는 절대 먹지 말고, 몸에 좋은 생강차나 녹차 등 전통차를 먹으라며, 그것은 어디 가면 싸게 살 수 있는지 점포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아…, 힘들다. 이쯤 되면 커피를 얻으러 간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서는 조언과 간섭의 경계가 애매한 지점이 있다. 그래서 그 둘의 기준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혹자는 상대가 원했을 때 묻는 것만큼만 답하는 것이 조언이고,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는 것은 간섭이라고 한다. 아무리 상급자라고 해도 권한을 넘어서는 말은 조언이 아니라고 한다. 또 조언은 상대가 나의 말을 듣거나 말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고, 간섭은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거슬리고 화가 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간섭받기 싫어하면서 묘하게 기회가 되면 남을 간섭하게 된다. 때로는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상사로서 ‘다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말이다. 하지만 상대를 위한다는 좋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조언이 되는 건 아니다. 상대가 원하는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이 부분은 특히 우리가 교화 할 때도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좋은 마음으로 신입교도에게, 건강에 좋은데 왜 산에 같이 가지 않느냐는 둥, 디스크도 예방할 수 있는데 왜 선을 하지 않느냐는 둥 그런 조언이 간섭일 수 있다. 그는 아직 그것이 들리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런 그에게 들으라고, 귀를 열라고 하는 것은 간섭이고 참견일 뿐이다.

나 역시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직업의 특성상 학생들에게 조언과 간섭을 참 많이 한 것 같다. 그 아이들한테 온전하게 내 마음이 전해졌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교육적 열정이 너무 앞서 마음 상할 학생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제 조언하고 싶을 때마다 우리 교법에 밝혀진 ‘무관사에 동하지 마라’라는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떠올리면며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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