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불복종에는 조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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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복종에는 조건이 있다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1.01.14 02:58
  • 호수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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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
서울교사회장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라는 문장과 함께, 머리를 짧게 자른 앳띤 여자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가득 차 있다. 작년 말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안티고네’의 포스터이다.

영화 ‘안티고네’는 이민자로 어렵게 살아가는 안티고네 가족의 이야기이다. 경찰과 대치 중 오빠가 든 휴대폰을 경찰이 흉기로 오인하여 그 자리에서 사살한, 가족의 비극과 시민 불복종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2008년 캐나다 퀘벡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이민자 청년의 이야기와 고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안티고네>에서는 국왕에게 반역을 범한 오빠의 시체를 들판에 던지고 국왕은 이를 절대 수습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여동생 안티고네는 오빠의 싸늘한 주검 앞에 왕명을 거부한 채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그녀는 그 대가로 결국 산 채 매장당하는 끔직한 죽음을 맞는다. 이러한 안티고네는 시민 불복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시민 불복종은 공적 권력이나 정책을 비판하면서 국가의 법률이나 명령을 거부하고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소로우는 멕시코 전쟁과 노예 제도를 지지하는 미국 정부에 대항하여 납세를 거부하고, 철학자 러셀은 수소 폭탄에 반대해서 국방부 앞에서 농성을 벌여 투옥됐다. 간디 역시 영국의 소금법에 저항하여 시민들의 소금 행진을 이끌었다. 여성의 투표권 획득이나 남아프리카 흑인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 등도 좀 나은 세상을 꿈꾸며 벌인 시민 불복종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민주사회에서 이렇게 시민 불복종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적 영역에서의 모든 결정은 구성원들이 이를 준수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결정이 결코 절대적 진리나 절대 선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바로 이점에서 소크라테스는 공적 권위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로크는 불법한 정부나 공적 권위에 대해 항거할 수 있는 저항권을 천부인권으로 인정했으며, 이후 민주사회에서 당연히 이것은 인정되는 권리로 이해됐다.

 

여기저기에서 불복종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불복종의 목적이 정당해야 하며

비폭력적이어야 하고, 불복종에 따른 불이익을

스스로 감수할 때, 비로소 그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개혁과 변화의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 불복종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공적 권위가 완전함을 담보할 수 없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비판하는 불복종 행위 역시 완전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기저기에서 불복종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권력이나 공적 권위는 옳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이 옳으니 불복종에 대한 불이익을 감수할 수 없다고 집단적인 으름장까지 놓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불복종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다른 여러 방법을 시도한 이후 최후의 수단으로 행사해야 하고, 불복종의 목적이 정당해야 하며 비폭력적이어야 하고, 불복종에 따른 불이익을 스스로 감수할 때, 비로소 그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개혁과 변화의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아테네 법정을 비난하고 아테네의 법률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친구 크리톤의 권고대로 감옥을 탈옥하여 야반도주하였다면 그의 철학적 업적과 올곧은 삶의 궤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오롯이 전달되었을까?

1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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