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이 흔들리는가? 바람이 흔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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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이 흔들리는가? 바람이 흔들리는가?
  • 박시형 교도
  • 승인 2021.01.27 20:09
  • 호수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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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개벽의 과학1
박시형 교도가 쓴 '깃발 바람 마음' 

 

물질이 개벽되는 현대, 이 개벽을 회광반조 해야 할 때이다.

이 물질개벽(AI라는 정신 비슷한 것을 포함해서)이 편리함을 지나쳐

사람을 ‘삭막하게 만들고’ 또는 ‘잠이 안 오게 만들고’

혹은 ‘지구까지 파괴’하고 있다.

20세기 물질개벽의 여명에 궁벽한 조선 땅에서 시작한

이러한 정신개벽 운동인 원불교가 어떻게 구원의 빛이 될지,

원불교 교도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숙제가 될 것이다.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스승 앞에서 두 제자가 흔들리는 것이 ‘깃발인가, 바람인가?’하고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육조 혜능 선사의 유명한 답은 ‘마음이 흔들린다’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갸우뚱한 해답이다. 과학으로 무장된 현대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소태산 대종사라면 무어라 대답하셨을까? 라는 화두로 새해 첫 칼럼을 시작해 본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로 세상을 구하는 것이 원불교 사명이므로, 이 마음 화두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언지 적합해 보인다.

첫 견해는 두 제자나 혜능이 무식했고 따라서 다 틀렸다는 견해이다. 우선 바람이 무엇인지 당시에는 몰랐다. 인류가 바람의 원리를 안 것은 1890년대 들어서였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공기 중에는 수많은 물질(공기 입자, 수증기 등)이 있어서 이들의 움직임이 깃발을 때려서 깃발이 움직이는 거다.

이런 입자운동을 수식으로 정립한 사람이 볼츠만이라는 청년이다. 비엔나에 가면 이 과학자의 동상을 만날 수 있고, 공기 입자의 무질서한 정도인 엔트로피가 공기 온도와 관련 있다는 공식이 쓰여 있다. 당시 노친네 과학자들은 이러한 우스꽝스런 생각(공기는 텅 비어 있는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텅 비어 있는 ‘공’이 어떻게 입자라는 물질로 채워져 있는가,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 볼츠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이 청년에게 빚지고 있다. 비행기도 공기 중 분자 때문에 뜨고, 우리가 일기예보를 보는 것은 볼프만의 공식을 매일 슈퍼컴퓨터로 푼 공기입자의 운동에 대한 예측이다.

둘째 견해는 과학(물질원리)을 몰라도 ‘진리’는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혜능은 성인이니까 마음이 흔들린다는 대답이 맞다고 우기는 방법이다. 종교는 보통 이런 입장을 취한다. 심지어 진리는 과학으로 알 수 없고 진리를 만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입장이다. 과학이 우주의 생성을 합리적으로 예측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교가 과학을 무시하거나, 교묘하게 과학을 빠져나가는 논리를 만들어 낸다.

다른 견해는 두 견해와는 사뭇 다른 ‘개벽’ 같은 것이다.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내가 깃발을 보지만(너무 명확한 듯하지만) 나중에는 거꾸로 깃발이라는 대상이 나의 마음에 투영되고(혹은 회광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회광반조라는 말이다. 더 한참 깃발을 보고 있으면, 내가 깃발을 보기도 하고, 깃발이 나를 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진다. 대상과 내가 서로 비춘다(상조)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쌍경’이라고도 한다. 즉, 깃발에 대한 새로운 존재 인식 방법이다. 원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물 흐르는 소리를 돌이 듣는’ 느낌일 것이다. 깃발이 당연히 바깥에서 흔들린다는 것과는 사뭇 다른 실제 체험이다.

이러한 존재 인식 방식을 현대 과학의 결정판인 ‘양자역학’이 지지한다. 깃발이 흔들린다는 절대 사건이란 것은 없고, 내가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결정한다는 견해이다. 심지어 상자 속 고양이가 내가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죽음과 삶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이다. 말도 안 되는 이 과학이 작은 입자, 빛에 대해서 모두 증명됐다.

물질이 개벽되는 현대, 이 개벽을 회광반조 해야 할 때이다. 이 물질개벽(AI라는 정신 비슷한 것을 포함해서)이 편리함을 지나쳐 사람을 ‘삭막하게 만들고’ 또는 ‘잠이 안 오게 만들고’ 혹은 ‘지구까지 파괴’하고 있다. 회광반조라는 체험과 실제 생활에서 적용만이 물질의 주인이 되는 마음의 힘을 키울 수가 있다.

20세기 물질개벽의 여명에 궁벽한 조선 땅에서 시작한 이러한 정신개벽 운동인 원불교가 어떻게 구원의 빛이 될지, 원불교 교도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숙제가 될 것이다.

(지난 연말, 한덕천 서울교구장님이 전한 유튜브 영상설교 ‘참회기도로 회향합시다’를 들으며 번쩍 든 생각을 정리해 봤다.)

박시형
강남교당 교도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지능형반도체포럼 위원장

 

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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