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가 가장 필요한 곳이 군(軍)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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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가 가장 필요한 곳이 군(軍) 사회이다
  • 정효천 교무
  • 승인 2021.03.09 17:00
  • 호수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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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계세요?” 작년 11월 인사 명령에 의해 교당이 없는 52보병사단으로 전입했다. 그 후 부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현실적으로 답하기를 “교회에 있는 사무실에 함께 근무합니다”라고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나 지금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는가?’를 대조하는 계기가 된다. 그동안 원불교라는 종교를 직접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종교시설이 없는 군종장교의 생활은 낯설기만 할 뿐이다. 어디에서 근무하느냐는 질문은 ‘이곳에서 원불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궁금함과 의구심이 내재된 복합적인 질문이 돼 나에게 꽂힌다. 그 순간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주는 교화의 표준이 바로 좌산상사께서 군 교화를 하는 교무들에게 내려준 ‘군종교무의 길’ 법문이다. 첫 번째로 당부한 내용은 ‘자비가 가장 필요한 곳이 군(軍) 사회’라는 점이다. 이로써 군종교화를 하는 교무들의 교화 표준은 자비여야 한다. 

전입 후 지휘관에게 편지를 작성하며 몸과 마음을 챙긴 일이 있었다. 코로나19의 상황으로 많은 부분의 변화가 타력적으로 요구됐고, 종교 또한 그에 따른 자력적이고 합리적 변화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런 시대적 변화의 요구 속에 종교시설(교당)이 없음에 감사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놓아야 더 크게, 넓게 바라볼 수 있음을 챙기고자 하는 나의 다짐이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폭넓은 활동의 군종장교 역할을 위한 업무 보고였다. 

군종장교는 주말에 자신의 종교행사 진행과 교도 관리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군인들과 함께 평일 일과를 준수하며, 군대 내 종교와 관련된 모든 행정업무에서부터 인성·사생관 교육, 근무지 방문 및 위로, 훈련 안전기도, 종교상담 등 많은 업무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다. 이 모든 과정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자비(慈悲)의 실천행’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시비이해로 운전해가듯 군대의 환경 또한 시비이해의 얽힘 속에 어려움과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삼대력(三大力)을 갖추지 못해 힘겨워하는 사람들, 불신·탐욕·나태·어리석음과 원망의 병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타력이 일상이 된 사람들, 잘 가르칠 줄 모르며 잘 배울지 몰라 혼란스러운 사람들, 공익심의 가치를 모르거나 사리사욕에 끌려 해독을 입고 강급의 길로 가는 사람들. 이 과정에서 은혜를 발견하여 진급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교화의 사명을 생각할 때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불안이 함께한다. 

매일 아침 이웃종교로 출근하는 발걸음 가운데 불편함과 어려움이 왜 없겠는가. 장소와 교도가 없어 예회 진행의 막연함에 어찌 불안함이 없겠는가. 그러나 막연한 보은행이 아닌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심에 더 없이 큰 자비와 감사를 느끼며 오늘도 당당히 군복 안에 교무 정복을 챙겨 입는다.

 

3월 12일자

정효천 교무군종교구·제52보병사단
정효천 교무
군종교구·제52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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