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개벽의 과학] 자성의 정과 양자 마음
상태바
[정신개벽의 과학] 자성의 정과 양자 마음
  • 박시형 교도
  • 승인 2021.04.25 04:15
  • 호수 1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신개벽의 과학4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br>지능형반도체포럼 위원장
박시형
강남교당 교도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지능형반도체포럼 위원장

원불교에서 매일 수행해야 하는 아홉 가지 중요한 방법이 있는데, 첫째가 마음의 본질(자성)이 원래는 고요한데 경계를 따라서 시끄러워진다고 한다. 따라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자성의 정(중심이 움직이지 않음)’을 지키라고 한다. 아홉 가지 방법 중 첫 번째로 제시한 것을 보면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 나머지 수행을 위한 기본이 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선’을 하다가 생각을 쉬게 되면 마음의 끝자락 같은 것을 만나게 된다. 이 끝자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점 중의 하나가 지극히 고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환희심 같은 것을 느낀다. 왜 그런 것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음공부에서 얻는 과실 같은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명상이나, 남방 불교의 마음챙김 기법에서도 같은 경지를 느낀다고 한다.

마음, 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 그리고 해답이 없을 것 같은 마음의 본질에 대해서 현대과학은 어떻게든 과학이라는 메스를 대려고 한다. 과학은 대충 얼버무리는 것을 싫어하므로, 메스로 잘 해부해서 인과 관계를 밝힘으로써, 본질을 만천하에 드러내려고 한다. 심지어 모든 현상은 수식으로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통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이런 것들이 모두 수학으로 아름답게 표현된다. 아마도 수학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우주의 본질이 드러나지 못했으리라. 그동안 미지의 세계였던 생명의 탄생, 진화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고, 심지어 뇌의 활동 또한 밝혀내고 있다. 과학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밝힘에 의해서 과거에는 고칠 수 없는, 그래서 무당의 힘을 빌어야 했던 정신병까지도 약으로 치료하고, 코로나 역시 백신으로 예방한다는 점이다. 백신 역시 분자이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분자이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꼼작 못하는 분자 구조를 만들면 된다는 뜻이다. 요즘 나오는 코로나 백신은 초기에 적합한 분자구조를 컴퓨터로 만들어 내어 컴퓨터로 성능을 확인한다. 놀라운 과학과 기술의 진전이다. 우리는 이렇게 과학에 기대어 산다.

 

양자 역학과 사람의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이 이러한 양자 얽힘 현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생각을 쉬기만 하면

나의 ‘마음’이 우주의 얽힘과 공명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즉, 나의 마음이 조용해지면

양자적으로 우주의 많은 것들과 서로 얽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성, 즉 원래 마음이 가지는 성질, 즉 고요하고 그름이 없고, 또한 어리석음이 없는 것, 혹은 ‘나’라는 것이 어디에 국집되어 있지 않고 우주에 편재한다는 느낌, 너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요즈음 과학은 어떻게 이해하려 할까?

양자과학은 고요한 곳에서 특성이 잘 나타난다는 데서 힌트를 얻는다. 양자 컴퓨터도 조용한 데서만 동작한다. 온도가 오르면 시끄러워지므로 거의 온도가 없는(절대 온도 0도) 조건을 만들어야 동작한다. 양자역학의 가장 놀라운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물질이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어느 한 곳에 국집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을 양자 얽힘이라고 하는데, 우주 저쪽에 있는 전자와 나의 몸을 이루는 전자가 서로 얽혀 있다는 것(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빛보다 빠르게 서로 영향을 준다.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이러한 양자 얽힘을 이용해서 양자 컴퓨터는 암호 같은 특별한 문제를 잘 풀어낸다. 양자 영향이 잘 느껴지려면 고요함이 유지되어야 한다. 우주는 조용한 편이지만 지구는 시끄럽고 사람은 시끄럽다. 우주에 비해서 지구의 온도가 높고, 생각이 많아서 뇌 신경이 시끄럽기 때문이다.

양자역학과 사람의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이 이러한 양자 얽힘 현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뇌세포를 싸고 있는 물분자는 컵 안의 물과는 다르게 조용히 붙어 있다. 따라서 생각을 쉬기만 하면 나의 ‘마음’이 우주의 얽힘과 공명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즉, 나의 마음이 조용해지면 양자적으로 우주의 많은 것들과 서로 얽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물질개벽의 시대,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된다고까지 걱정하는 시대를 예견하고 정신개벽을 인류의 나아갈 빛으로 내건 원불교 가르침, 특히 자성의 정을 첫 화두로 내걸고 이를 실제 생활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원불교가 빛을 발해야 하는 시대이다.

아무리 양자역학으로 마음을 설명하더라도, 그러한 생각으로 오히려 양자과학자의 마음은 시끄럽다. 과학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성의 정을 지키는 공부는 따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4월 30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