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령산에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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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에 깃들다
  • 강석준 교무
  • 승인 2021.05.02 14:09
  • 호수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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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에서 온 편지1

 

올해 1월, 익산 총부에서의 3년 생활을 마치고 축령산에 있는 오덕훈련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오랫동안 살았던 서울 근처이고, 또 예전에 아이들 어렸을 때 축령산에 몇 번인가 산행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축령산은 이름에서 보여주듯 신령스런 기운이 서린 곳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에 이곳에 사냥을 왔다가 허탕을 치자 동네 사람들이 이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고 해서 정상에 올라 제를 지내고서야 사냥에 성공했다고 한다. 또 축령산 입구에는 할매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정성껏 소원을 빌면 큰 복을 받는다고 한다, 산 중턱에는 홍구세굴이라는 기도터가 있다. 여기서 기도하면 영험하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어 과연 축령산이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린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기운이 강한 터라서 그런지 나도 처음에 와서 자리 잡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겨울, 마지막 내린 눈을 가벼이 보고 산행에 나섰다가 눈길에 발목을 다쳐 한 달 이상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것이다.

이제 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을 따라, 온 산이 날로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다. 초록은 산등성이의 산벚나무 꽃과 어우러져 매일 봄 축제를 열고 있다. 5월이 되면 옆 봉우리 서리산은 연분홍색 철쭉꽃으로 치장하고 한바탕 잔치를 벌일 것이다. 이곳의 철쭉은 꽃이 크고, 군락지가 우리나라 지도 모형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도 이 봄에 등 떠밀려 본관 옆의 자갈밭을 일구어서 돌을 골라내고 이랑을 내어 봄 준비를 마쳤다. 이 밭은 올 한 해 동안 우리 훈련원 식구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할 것이다. 아직은 초보 농군이지만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고, 지켜보면서 한없는 천지의 은혜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난 해준 게 별로 없는데 매번 자연으로부터는 큰 선물을 받는다. 자연은 스스로 새로운 날을 준비하고 넘쳐나는 생명력으로 은혜를 베풀고 있지만, 사람들은 얼마나 오롯이 자연의 은혜를 느끼고 있을까? 물질 만능의 세태와 스스로 만든 습관의 굴레에 갇혀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아직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지만,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연을 닮아가며 다시금 만남이 자유로워졌을 때 세상에 조금이라도 빛을 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5월 7일자

오덕훈련원 강석준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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