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의 향기] 법문만큼 '좋은' 소재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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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법문만큼 '좋은' 소재가 있을까요?
  • 강법진 편집장
  • 승인 2021.06.03 01:33
  • 호수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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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중곡교당 호산 한명호 교도부회장

 

어느 날 사경을 하는데 법문이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들렸어요.

마음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은(四恩)에

나를 맞춰 가는 공부잖아요.

좋은 그림은 ‘소재’가 중요해요.

소재만 있으면 다 그릴 수 있어요.

<정전>만큼 좋은 소재가 또 있을까요?

 

처음에는 법문 사경으로 시작했다. 한 글자씩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것이 사경인 줄 알았다. 쓰면 쓸수록 법문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다 법문이 서서히 체화될 때쯤 그림이 그려졌다. 법문을 딱딱한 문자로만 표현해내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정전〉에 담긴 스승님의 뜻을 자신만의 표현으로, 시대의 코드로 해석해 보고 싶었다. 그림으로 표현해보니 대번에 손녀도 관심을 가지고 의미를 읽어냈다.

그의 작품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준 것은 민성효 교무였다. ‘그림과 함께 하는 법문사경 노트’도 제작하고, 지난 4월 29일~5월 4일에는 익산성지 일원갤러리에서 ‘호산 한명호의 그림과 함께 하는 마음공부전’ 전시회도 열었다. 그는 일주일간 익산에 머물며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람객들을 매일 같이 맞이했다. 대부분 ‘내가 생각했던 바를 여기서 확인했다, 그림이 편안하다, 색감이 부드럽다’고 평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만족했다. 법문이라는 ‘좋은 소재’로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는 그. “은퇴 한 지금이 전성기”라는 중곡교당 호산 한명호 교도부회장을 만났다.

 

퇴임 후 얻은 기쁨

어릴 적부터 그는 명석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학구열만큼은 남에게 뒤지는 법이 없었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자신에게나 타자에게 냉철함을 잃지 않기 위해 삶의 중심을 항상 유지했다. 그 덕분에 직장에서도 승승장구하여 LG그룹 계열사 CEO로 퇴직한 후, 우송대 경영대 학장, 한화L&C의 CEO로 초빙될 정도로 전문 경영인으로서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부인(선타원 허인정)과 퇴임 후 정년을 즐기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원불교라는 든든한 신앙처가 있다. 대기업 CEO 출신도 집에서는 살림꾼이 되어야 하고, 손주들 앞에서는 자애로운 할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교당에 오면 무아봉공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경영자로서의 통찰력이 삶과 마음공부에도 그대로 배어 나온 결과가 그림 법문사경 노트라고 한다.

 

이야기가 있는 법문

“어느 날 사경을 하는데 법문이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들렸어요. 마음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은(四恩)에 나를 맞춰 가는 공부잖아요. 내가 알고 있는, 경험했던 것들을 법문에 대조해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쁨을 알게 됐죠. 좋은 그림은 ‘소재’가 중요해요. 소재만 있으면 다 그릴 수 있어요. <정전>만큼 좋은 소재가 또 있을까요?”

게다가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번다하지도 않다. 아이패드 앱 하나만 실행하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평생 모르고 지냈던 그림 재능을 발견해 준 물질문명의 혜택이다. 그리고 그는 누구에게라도 “건강을 위해서 손 쓰는 작업을 놓지 말라. 할 수 있으면 감성과 스토리를 엮을 수 있는 그림 같은 새로운 방법으로 경전을 공부해 보라”고 권한다. 또 바람이 있다면 교단에도 예술성과 종교성이 뛰어난 그림 경전이 나왔으면 한다고. 르네상스시대 가톨릭 성화가 시대와 세대를 뛰어 넘은 것 같이 우리 원불교도 종교문화의 힘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은 버리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림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지워내야 하고,

평소 생활에서도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버리지 못해서예요.

한두 가지라도 집중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버리는 연습하기

그의 작품 ‘새 세상을 여는 대각개교절’은 이번 전시회에서 단연 인기를 끌었다. 시기도 시기였지만 ‘01010101’이라는 디지털혁명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상생으로 정신을 개벽해 가자는 ‘일원상(0)’의 표현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가슴에 꽂혔다. 덕분에 작품 주문도 꽤 들어왔다. 그 외에도 코끼리 법문과 집집마다 부처가 사는 세상, 자력신과 타력신, 오뚜기 법문 등은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 따듯한 전시였다.

“제가 그림으로 법문을 표현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원불교가 더 감성적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뭘 하라고 강요하지도 말고 자신이 느낀 만큼 표현하고 체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부를 했으면 해요.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잘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실은 버리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림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지워내야 하고, 평소 생활에서도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버리지 못해서예요. 한두 가지라도 집중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에게는 아이패드 앱으로 그린 그림이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호산 한명호 교도가 원기106년 육일대재를 앞두고 그린 그림이다. 

 

그리고 하나 더 제안하자면 “젊은 교무님들이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공부를 많이 했으면 해요. 음악도 그렇지만 그림이나 프리젠테이션, 유튜브 채널 등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기법들을 많이 배웠으면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그에게 “에이징이란 말이 있잖아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말들 하는데 익을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와인처럼 지금이 제 인생의 전성기 같아요. 겉모습이 조금 늙었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어요. 돈 버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할 거예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뒷모습마저 멋진 그의 인생이 또 한 번 궁금해졌다.

6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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