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치매의 시대’ 시급해진 자기 천도의 길
상태바
[한울안칼럼] ‘치매의 시대’ 시급해진 자기 천도의 길
  • 전종만 교도
  • 승인 2021.06.11 17:44
  • 호수 1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울안칼럼
전종만 수원교당 교도<br>하나병원 원장
전종만 
수원교당 교도
​​​​​​​하나병원 원장

“여보! 이번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받는 배우 이름이 뭐지?”

아내의 기습적인 질문에 잠시 머리가 멍하다.

“양들의 침묵인가 하는 영화에 나왔던 사람 말이야. 안소니··· 뭐더라.”

그제야 번쩍 생각이 난다.

“홉킨스!”

아내와 나는 반가움과 걱정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서로를 본다. 그 눈빛 속에는 ‘이제 우리는 함께 머리를 짜내지 않으면 완전한 기억을 할 수 없나 봐’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맨날 서로의 등만 보고 자던 우리 부부는 그날만큼은 두 손을 꼭 잡고 ‘치매가 와도 서로 잘 돌봐 주기’ 서약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진짜 치매가 오면 이런 약속조차 기억나지 않겠지만···. 초고령화 시대가 열리면서 치매 환자가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65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1명, 85세 이상에서는 4명 중 1명이 치매 환자이며 이는 10년 전보다 3배가 늘어난 수치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음의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해야 한다’라고 하셨지만 이젠 죽음 앞에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는 치매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치매는 기억뿐만 아니라 집중력, 이해력, 판단력 등 종합적인 인지기능의 손상을 가져온다. 예전에 잘했던 일들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한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못하게 발목을 잡고 종교적으로 보면 죽음에 대비하여 자기 천도의 길을 갈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이다.

문제는 이 병의 유전적인 영향 때문에 노력만으로는 예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죽음뿐 아니라 치매에 대비하여 부지런히 자기 천도의 길을 닦아 가야 한다.

치매의 정신행동 증상은 대개 착심(着心)과 연관되어 있다. 며느리가 자기 물건을 가져갔다며 얼굴을 할퀴기도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고 새벽에 집을 나서기도 한다. 성적으로 민망한 행동을 보이거나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비난의 말을 무한 반복하기도 한다. 착심에서 나오는 이들 증상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고통과 부담을 준다.

31개 대학병원에서 1,786명의 알츠하이머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86%에서 이런 ‘예쁘지 않은 치매’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반면 인지기능이 떨어지더라도 보호자의 말을 잘 따르고 온순하게 생활하는 ‘예쁜 치매’도 있다. 뇌의 병변 부위가 어디인지, 병리 양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증상의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치매가 오기 전 마음 수양을 얼마나 잘했는지도 치매의 정신행동 증상을 가늠하는 요소일 수 있다. 부모나 자식에게 품었던 원망, 친구에게 배신당했던 속상함, 누군가에게 오해받았던 억울함은 치매 환자에게 이제는 과거가 아닌 생생한 현실이다. 마음에서 소화하지 못한 이런 심리 문제들은 모두 강력한 착심이 되어 ‘안 예쁜 치매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직 착심을 여의고 업을 초월하도록 당부했던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따라 일찍 자기 천도를 시작한 사람은 뜻하지 않은 치매가 오더라도 ‘예쁜 치매’로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그에게는 찌꺼기처럼 달라붙은 번거로운 마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겨도 주변의 보호에 순리대로 따르는 데 어려움이 없다.

자기 천도를 마친 깨친 자에게 죽음은 눈을 떴다가 감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잠이 들었다 깨는 것과 같은 변화라고 한다. 치매가 고통이 아니라 과거를 정리하고 변화에 순응하는 과정이 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 천도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치매···, 자기 천도의 수행 길은 시급해졌다.

6월 18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