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개벽의 과학] 경계 조건과 마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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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개벽의 과학] 경계 조건과 마음공부
  • 박시형 교도
  • 승인 2021.06.21 20:16
  • 호수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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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개벽의 과학6

 

지난주,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전시회에서 반가운 동창들을 만났다. 당시 엘리트들이 주도하던 불교학생회인 룸비니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요즈음 마음 경계가 어떤지 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경계가 무엇인지 되묻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용어로 생각하고 물었던 나도 깜짝 놀랐다.

경계와 마음공부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원불교에서 나온 글이 대부분이다. 경계라는 개념이 불교, 특히 인도에서 나온 개념임에도 현재 한국, 아니 전 세계 인터넷에서 ‘마음공부와 경계’라는 개념을 원불교가 독식하고 있는 꼴이다. 경계는 인도말로 Visaya를 번역한 말로, 외부 환경과 인간의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기관(흔히 5근이라고 부르는)이 마주치는 점을 말한다. 원불교에서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외부 조건을 말하는 것과 같다.

다른 한편으로 경계와 같이 과학에서 중요한 개념은 없다. 미분 방정식을 풀려면 반드시 경계 조건을 줘야 한다. 서양에서 시작한 근대 과학 대부분은 미분 방정식을 기초로 한다. 양자역학도 그렇고 뉴턴 방정식도 그러하다. 기상 예측, 자동차와 핸드폰 설계 또한 미분 방정식을 풀어서 한다. 그런데 경계 조건을 주지 않으면 미분 방정식의 풀이를 구할 수 없다.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자. 스마트폰으로 전파를 받아서 전화도 하고 영상도 받는다. 공기를 통해서 날아온 전파는 ‘나의 전화’라는 경계 조건을 만나서, 비로소 어떤 정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안테나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는 좋은 신호를 뽑아내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경계 조건을 가지도록 안테나를 설계하고 이를 스마트폰에 구겨 넣는다. 우리는 이 안테나를 들고 다니는 꼴이다. 이처럼 경계 조건은 중요하다.

 

경계를 원수로 생각하고 만나지 않으려

아예 숨어버리는 수행자를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원불교에서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경계를 ‘은혜’로 보는 시각이다.

나의 마음의 존재와 의미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경계이므로 경계를 만나는 자체가 은혜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서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놀라운 본질적이고도

실천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악기 연주 또한 경계 조건을 바꿔 주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기타 줄에서 만들어지는 음은 내가 손가락으로 집어주는 경계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를 과학에서는 ‘고유함수(eigenfunction)’라고 한다. 시야를 넓혀서 우주로 나가 보자. 텅 빈 우주에서는 설사 햇빛이 지나가더라도 빛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손이나 물체를 대어 보지 않고는 빛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빛이 방안의 먼지를 받아 산란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처럼 경계를 만나지 않고는 본질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원불교 수행법의 기초가 되는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첫 세 항목은 마음의 근본 자리(심지)에 관한 것이다. 즉 마음자리는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경계에 따라서 어리석고, 그르고 요란함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원래 ‘나의 마음’이라는 본질이 있는데, 이 마음이 경계를 만나서 ‘어리석고, 요란하고, 그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경계는 원수와 같은 것일까? 왜 경계는 마음이라는 본질을 어리석고 요란하고 그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할까? 여기서 경계를 보는 새로운 틀을 발견할 수 있다.

경계를 원수로 생각하고 만나지 않으려 아예 숨어버리는 수행자를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원불교에서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경계를 ‘은혜’로 보는 시각이다. 나의 마음의 존재와 의미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경계이므로 경계를 만나는 자체가 은혜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서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놀라운 본질적이고도 실천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항상 흔들리는 마음, 번뇌에 시달리는 마음을 다시 반추해서 번뇌를 알게 해주는 경계에 감사하고 이를 수행의 기초로 삼는다는 생각이야말로 인류에게 주는 ‘개벽’ 같은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br>지능형반도체포럼 위원장
박시형
강남교당 교도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지능형반도체포럼 위원장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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