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근본적 은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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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근본적 은혜 관계
  • 오민웅 교도
  • 승인 2021.06.25 23:34
  • 호수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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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오민웅<br>원남교당 교도<br>삼동법률사무소
오민웅
원남교당 교도
삼동법률사무소

요즘 같은 화창한 날씨는 산책하기도 너무 좋은 날이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화창하며 나뭇잎들은 푸르름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고 꽃들이 활짝 피어있다. 하천 근처에는 졸졸졸 소리를 내며 맑은 물들이 흐르고, 물 안을 보면 송사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정말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런데 산책을 하다 보면 늘 마주치는 친구들이 있는데 바로 주인과 산책을 나온 여러 ‘반려동물’이다. 우리나라가 점점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수가 많아져서 요즘은 흔하게 거리에서나 산책로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필자는 문뜩 궁금해서 ‘반려’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라는 뜻이다. 이렇듯 짝이라는 의미로 보통 함께 가는 짝인 아내나 남편을 반려자라고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 정말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려동물들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지낼 수 있도록 챙겨주는 것뿐만 아니라 외롭지 않도록 정서적으로도 잘 보살펴주고 운동도 시키며 건강도 지킬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시간도 많이 투자하고 경제적인 부분도 많이 들어가는 데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아깝거나 소모적이라고 느끼지 않고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고 한다. 이렇게 반려동물에 대해서 시간과 노력을 쏟는 대신 반려동물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반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은에 대한 은혜는 잘 알지 못하고

마치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외로움을 느끼고 고독감을 느낀다.

필자도 자녀를 키우지만, 자녀를 키우는 데도 똑같이 여러 가지 수고로움과 경제적인 부분, 시간 등 많이 들어간다. 이렇게 자녀를 키우면서 기쁨과 사랑을 느끼며 때로는 자녀를 통해서 위로도 받게 되고 삶의 목적도 얻게 되는 것 같다.

대종사께서는 <정전> 교의편 사은 동포은에서 ‘사람도 없고 금수도 없고 초목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라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볼 것이니, 그렇다면 누구나 살지 못할 것은 다 인증할 것이다. 만일, 동포의 도움이 없이, 동포의 의지가 없이, 동포의 공급이 없이는 살 수 없다면 그 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으리요.’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반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은에 대한 은혜는 잘 알지 못하고 마치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외로움을 느끼고 고독감을 느끼다 보니 점차 가족에게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자꾸 반려동물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로 이미 인연 지어져 있는 반려 관계인 사은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느끼고 안다면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롭지 않으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고 의지하고 있음을 안다면 더 이상 우리는 반려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통해서 위안을 얻고, 의지처가 되고 기쁨을 얻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근본적인 사은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은의 은혜에 감사하고 서로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깨달아 보은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근본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7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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