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는 하고 볼 일
상태바
교화는 하고 볼 일
  • 정효천 교무
  • 승인 2021.07.03 18:13
  • 호수 1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종교무의 길 10
정효천 교무<br>​​​​​​​군종교구·제52보병사단
정효천 교무
군종교구·제52보병사단

3사관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생도가 임관 후 초임장교로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같은 사단으로 배치돼 전입신고를 위해 왔다가 나를 보겠다며 연락이 왔다.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고 산 중턱에 있는 군종부 사무실까지 올라왔다.

환한 미소로 나를 보며 “교무님!”하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사심 없고 순수하며 열정으로 가득한 눈빛을 마주하니 최근 이곳에서의 교화가 안정되면서 출장법회 진행으로만 안분하던 내 모습이 문득 작게 비춰진다.

그 초임장교가 지난날을 기억하고 오늘의 이곳까지 찾아와 반갑게 불러준 교무는 어떤 모습의 원불교인가? 만남을 마무리하고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본다. 작년 2월 코로나19로 인해 대구지역에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하여 약 3개월간 영천지역에 있는 3사관학교 밖을 일절 나가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종교활동이 문제가 되었고 군대의 모든 종교 역시 ‘대면 시행 금지’라는 제재가 내려왔다. 자연스럽게 생도들과 교화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없어졌고, 이웃종교에 비해 역사적으로나 교화적으로 기반이 약한 원불교 군종교무로서는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원불교의 기억을 망각시키지 않도록 생각한 것이 ‘보여주기’ 교화였다. 일과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기에 생도들 체력단련 시간이 마무리되기 30분 전 원불교라는 존재가 잊혀지지 않도록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혼자 꾸준히 운동(몸 공부)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가는 생도들 가운데 거리를 두고 반갑게 인사하는 인연도 생겼고, 자기들끼리 교무님 아니냐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는 보람도 있었다.

규제가 완화되면서 한 생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운동을 가르쳐줄 수 없냐고 물어왔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이후에도 나의 일정보다 우선하여 가능한 한 많이 만났고 운동을 하면서 원불교 공부를 접목해 시간을 보냈다. 이 인연으로 교당에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법회에는 참석하지 않았기에 이유를 묻는 것이 오히려 어색해질까 봐 지금의 인연에 충실하기로 했다.

인사이동을 하게 되어 마지막 법회 시간에 처음으로 교당에 와 눈시울을 붉히며 아쉬워하던 그 생도가 이제는 소위가 되어 찾아왔다. 앞으로 근무하게 되는 곳을 물었더니 놀랍게도 법회를 개설하고자 염원했던 예하 부대로 배치가 됐다고 한다. 교화의 연결고리가 걸리는 순간이었다. 당장 교화결실이 맺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생도 시절 그 인연을 피했다면 오늘의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좌산상사께서 해주신 법문 중 ‘한마디 말, 한 행동, 한 마음, 한 표정에서도 교법 정신이 물씬 묻어나야만 교화결실로 이어진다.’(군종교무의 길 7조)는 말씀이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정말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교화는 하고 볼 일’이다. 챙기고 또 챙기는 정성의 힘이 간절해진다.

7월 9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