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행복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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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행복 강박
  • 한울안신문
  • 승인 2021.07.18 22:50
  • 호수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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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만 수원교당 교도<br>하나병원 원장
전종만 
수원교당 교도
​​​​​​​하나병원 원장

‘행복하지 않아요. 뭐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며칠 전 외래를 방문한 내담자의 고민은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가댁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의 유일한 꿈은 번듯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아 누구보다 모범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을 마친 후 공기업에 취직하여 결혼도 하고 슬하에 딸, 아들도 두게 됐다. 서울에 집도 마련하고 좋은 차도 굴리며 경제적으로 제법 풍족한 생활을 즐겼고 아이들 또한 말썽 없이 자랐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가슴 한편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꿈꾸던 대로 되었는데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천국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잘살고 있다는 ‘뿌듯함’ 정도는 아쉽지 않게 느낄 줄 알았는데 삶의 공허함에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불면의 날들이 더해가고 삶의 의욕마저 희미해지자 견디기 힘든 불안감에 진료실 문을 두드린 것이다.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자신이 생각한 최적의 조건을 만들었지만 왜 행복은 그를 외면했을까. 행복은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요즘처럼 행복에 대한 말과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매스컴이 행복을 종용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뭔가 큰 결함이라도 있는 것처럼 몰아붙인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종의 ‘행복 강박’이다. 그러다 보니 행복감이 없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불안하고 쫓기는 마음이 든다. 행복에 대한 생각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을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불행해진다’라고 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원더풀라이프’에서 이렇듯 행복 강박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행복의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죽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무는 중간역에서 사람들은 이승에서의 한 가지 기억만을 선택해 천국으로 떠날 수 있다. 다른 기억들은 모두 삭제된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그 기간에 그들이 선택한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대단한 성취나 환희의 기억이 아니었다. 딸의 결혼식 날 손을 맞잡고 입장하던 발걸음, 관동 대지진을 피해 들어간 대나무 숲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던 주먹밥, 통학 길에서 버스 차창 너머로 불어오던 바람의 느낌과 같은 소소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이었다. 행복은 자기가 정한 목표를 달성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살다가 뜻하지 않게 얻어지는 특별한 감정임을 영화는 말한다.

행복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잡았는가 하면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와 같다. 하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항상 우리 곁에 함께 있었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가로막았을 뿐이다. 대종사께서는 제힘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제힘으로 남들까지 살려주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주력을 갖추고 공심(公心)으로 살다 보면 행복은 선물처럼 찾아온다는 말씀일 것이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가끔 반갑게 찾아오는 손님과도 같다. 손님은 때가 되면 다시 떠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행복에 목메지 말자. 우리는 진리의 가르침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고 행복은 삶의 어느 순간, 그저 반짝일 뿐이다.

7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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