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개벽의 과학] 기후 변화와 중도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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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개벽의 과학] 기후 변화와 중도마음
  • 박시형 교도
  • 승인 2021.07.29 20:18
  • 호수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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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개벽의 과학7

1997년 교토 기후 협약서가 채택된 이후, 최근 기후 변화가 다시 화제 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후 변화 대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짐에 따라 한동안 물밑 아래 있었던 이슈이다. 전 세계가 자동차뿐만 아니라 어떤 제조업에서도 기후 변화를 주는 요인은 아예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2030년경부터, 내연기관 자동차는 생산 판매를 금지한다고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선진국이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한, 전기자동차 관련 산업뿐만 아니라 기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환경 산업이 큰 가치를 가지는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기후 변화라는 현상의 가장 큰 본질은 무엇일까? 원불교 표어인 ‘정신개벽’이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될까?

지구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태양에너지이다. 이 에너지가 탄소 분자와 수소가 결합한 모양으로 땅에 저장된 것이 석유 석탄이다. 산업 혁명 이후, 인간은 대량으로 석탄·석유를 연소시켜서(공기 중 산소와 결합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개발했다. 태양열이 땅에 저장된 것을 거꾸로 사용한 것이다. 이 에너지를 이용해서 기차도 움직이고 전기도 만들고, 공장도 돌렸다. 문제는 부산물로서 CO2를 배출한다는 점이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 또한 비슷한 일을 한다. 음식으로 탄소 수소화합물(=탄수화물)을 섭취하고 호흡으로부터 O2를 받아서 세포 내에서 천천히 태워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이 모든 일이 세포 내에서 일어나며 정교한 단백질 작용으로 에너지 변환 속도를 조절한다.

이것을 ‘메타볼리즘’이라고 한다. CO2가 나쁜 것이 아니다. 식물은 호흡으로 CO2를 받아들여서 물과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탄수화물을 만들어서, 동물에게 바친다.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식물과 동물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대한 사이클을 ‘탄소 사이클’이라고 한다. 많은 과학자는 이러한 자연의 정교함에 신비함을 느끼며 과학의 디테일을 연구할수록 오히려 더욱 하느님을 믿는다. 원불교에서는 ‘일원(一圓)’이 이러한 일을 주재하는 근본 원리라고 가르친다.

문제는 식물이 CO2를 먹는 것보다 우리가 CO2를 만드는 양이 훨씬 크다는 데 있다. 산업 혁명 이후, 인간은 대량으로 물건을 만들고 자동차를 이용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로부터 부를 누렸다. 반대급부로 CO2를 과잉으로 만들어서 공기 중에 뿜어내었다. 대기 중에 둘러싸인 CO2가 지구에서 내보내는 열을 가둬 우주로 내보내지 못하게 한다. 소위 온실 효과라는 것이다.

문제 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CO2 배출량을 줄이면 된다. 줄이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는데, 아예 석탄/석유를 때지 않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방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CO2 배출 없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환경론자나 자연주의자가 좋아한다. 우리가 적게 소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옛날로 돌아가자고까지 한다.

두 번째 방법은 CO2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전환법을 개발하자는 쪽이다. 탄소에 붙은 수소를 떼어서 에너지를 사용하는 대신, 그냥 순수한 수소를 산소와 결합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사용하자는 것이 수소 자동차이고, 수소 경제이다. 수소를 결합할 때는 CO2가 만들어지는 대신 H2O 즉 물이 만들어진다. 또한, 배터리에 전기를 저장시키고 이 전기로 자동차가 움직이면 CO2가 발생하지 않는다. 전기를 원자력으로 만들면 CO2가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방법에 있어서도 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자연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여름에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여름을 지낼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전기료를 두 배로 만드는 수소 전기를 사용할 것 같지도 않다.
 

기후변화 마음도중 / 박시형 作


여기에 자본주의를 보는 바른 눈이 존재한다. 역사는 자본주의 등장과 그 전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탐험선을 만들어 외국에 나가서 조사도 하고 자원도 발굴하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거나(채무) 아니면 주식을 받고(주주가 되고) 돈을 만들어서 이 젊은이에게 준다. 이 자산을 이용해서 젊은이는 탐험할 수 있다. 선원 월급도 주고 배도 짓고, 기술도 개발하는 데 돈을 쓰고 나서 이익이 남으면 이 돈을 주주에게 주고(배당금) 꾸어준 사람에게 이자로 준다. 세금도 내고, 남은 돈으로 또 좋은 배를 짓는다(투자).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은 행태를 동양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협력해서 무엇을 만드는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개벽 같은 생각이다.

이 자본주의 덕분에 서양은 번성하고 동양은 식민지가 되었다. 이러한 개벽 덕분에 지난 300여 년간, 나라도 부강해지고(세금) 사람들이 월급도 받고, 이자도 받고 배당금도 받았다. 이러한 힘으로 대량생산과 공급을 하게 되었다. 많이 만들어야 싸지고 싸져야 많이 팔린다는 사이클이다. 자본주의가 아니었으면, 세상 사람들이 싸게 신선한 음식을 살 수도, 인터넷을 할 수도, 자동차를 살 수도 없다. 백신도 싼 가격으로 맞을 수 없다. 로마 황제보다 요즈음 보통 사람들이 더 잘 산다.

많은 환경론자가 CO2와 플라스틱은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경계가 생길 때 중도를 잡아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플라스틱이 없으면, 지구의 나무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원불교의 바른 눈이 있다. CO2 배출이 없는 기술, 썩는 플라스틱 기술 개발을 앞당기는 ‘선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자본주의에 물질의 주인이 되는 마음을 접목하는데 앞장서는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리 탐구하는 마음이야말로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중도적인 방법을 찾는 바탕이 될 것이다.

7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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