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독서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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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독서와 신앙
  • 조상덕 교도
  • 승인 2021.08.08 00:59
  • 호수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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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은근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을 지닌 나는 상대의 눈빛과 억양의 미묘한 변화에도 몇 날 며칠을 끙끙대고 앓는다. 이런 나의 취미가 독서라는 것은, 그것이 읽는 즐거움이나 자기 성장의 흐뭇함을 줘서라기보다는 도망갈 자유를 구할 수 있어서라고 해야 더 옳다.

혼자 아는 애끓는 심사를 모른 척할 수 있는,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거운 업장의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죽도록 그리운 누군가를 아무도 모르게 소환해 낼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묘술, 그것이 바로 독서인 것이다.

가끔은 신앙도 독서와 다른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사를 해결하기 위해 이 공부한다며 그럴싸하게 말해왔지만 결국 내 인생에서 신앙은 독서의 조금 더 근원적인 방편, 딱 그만큼이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일원상 앞에서 속삭이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염불 자락에 실어 보내는 것. 그것이 자간과 행간 사이를 오가며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행위와 뭐가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무엇이든 괜찮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지금 이 법을 신앙하는 비밀스러운 이유가 무엇이건,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앞 못 보는 이가 더듬어서라도 일원상 그 자리에 닿을 수 있다면 된 것이지.

오늘만큼은 어수룩한 신앙인의 거적을 쓴 지금의 내 모습에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어야겠다. ‘애썼다’, ‘그래도 포기는 안 했구나?’ 하며 놓지 않고 가보려는 그 마음을 갸륵하게 여겨야겠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노인과 바다』, 『데미안』과 같은 걸작도 어느 누군가의 펜 끝에서 시작된 철자 하나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는 업보와 생사도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그런 나를 오늘은 기특하게 도닥여줘야겠다.

 

글/ 조상덕·일산교당 교도

 

8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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