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사소한 일에도 지극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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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사소한 일에도 지극하였는가
  • 전종만 교도
  • 승인 2021.08.17 12:37
  • 호수 12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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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전종만 수원교당 교도<br>하나병원 원장
전종만 수원교당 교도
하나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하고 담당한 나의 첫 환자는 조현병 환자였다. 30년이 넘는 투병 생활 탓에 가족들은 연락이 끊겼고 증상은 만성화되어 혼자서 목욕하는 것도, 적절한 의사 표현을 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주치의가 되어 의욕과 열정으로 중무장한 그 시절. 선배 의사들이 어쩔 수 없었던 그 환자를 기필코 완치시켜 보겠다는 의지로 매일같이 상담도 하고 다양한 약물도 새롭게 사용해 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당신은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요…. 욕심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만 커갔다. 조급함 때문에 약용량만 계속 올라가고 나중에는 없던 부작용까지 나타났다. 보다 못한 의국장 선생님께서 갈피를 못 잡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내게 한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너와 같은 마음이었어. 하지만 만성 조현병 환자는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아. 1년 차에 그런 힘든 환자를 맡기는 것은 쉽게 좋아지지 않더라도 정성을 다해 환자 돌보는 마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야.”

돌아보면 별생각 없이 따랐던 정신건강의학과의 수련 생활은 환자에 대해 정성스러움을 기르는 과정이었다. 입원 병동에서 환자들과 같이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탁구를 하고 침상 정리를 돕는 사소한 일상들은 그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경험하고 느끼고 이해함으로써 작은 것에서부터 치료에 정성을 다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극진해야 정성스러워진다.

정성스러움은 몸에 배어 나오고

그것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

정성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으며 오직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중용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성의 본질을 말한다. ‘사소한 일에도 극진해야 정성스러워진다. 정성스러움은 몸에 배어 나오고 그것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 정성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으며 오직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성(誠)이란 하늘의 도이며 성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이다.’ 태양은 기분에 따라 뜨는 것이 아니고 땅은 욕망에 따라 양분을 주는 것이 아니다. 미물까지도 차별하지 않는 꾸준한 천지의 정성이 있기에 만물은 생육 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 마음은 천지와 같은 정성을 품고 있는가. 대산종사는 실력이 부족하다며 불안해하는 제자에게 정성이 실력이라고 했다.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성이 모자라는지를 늘 살펴야 한다. 자신이 서원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정성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운명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조금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고 해버린다.

율곡 이이는 자기 수양의 지표로 삼고자 지은 〈자경문(自警文)〉에서 ‘성인(聖人)이 되고자 쉼 없이 노력하고 수양과 공부는 서두르지 않고 계속해야 하며 해야 할 일이라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盡誠)’고 했다.

원불교인들은 해마다 8월이 오면 하늘을 감동시킨 법인성사의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고 서원을 향한 자신의 정성이 얼마나 극진한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천지의 지극히 정성한 도를 닮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 천지가 미물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듯 숨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 다른 이에게 말 한마디, 눈빛 한 번 건네는 것, 발걸음 하나 옮기는 것까지 온 정성을 다해보자. 정성스러움은 그런 사소함에서부터 우러나온다.

 

8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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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홍 2021-08-19 17:57:25
글에서 이미 정성이 묻어납니다. (p.s. 제목이 '자극하였는가'가 아니라 '지극하였는가'인 것 같은데 오타가 났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