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즉시색]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 참회문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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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즉시색]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 참회문 ⑧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08.24 15:36
  • 호수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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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48

「(공부인이 성심으로 참회 수도하여 적적성성한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고 보면 천업(天業)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어서, 삼계육도(三界六途)가 평등일미요, 동정역순이 무비삼매(無非三昧)라」

자기 안의 참 부처[자성불]를 깨쳐서 마음의 자유를 얻으면「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시비·선악과 같은 상대적(相對的) 분별심으로 유위(有爲), 유상(有相)의 수행을 하는 공부인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위 대목은 무시선법에 나오는 「시비선악과 염정제법이 다 제호의 일미를 이룬다」고 하는 불이문(不二門)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에서 본다면 작업취사란 취하고 버리는 공부로써, 곧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무엇이 되었든지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앞에서(참회문④회) 이미 밝혔듯이 수·연·취 삼학은 대상(경계)에 머묾이(주한 바가) 있는 공부로써, 분별심을 가지고 닦는, 물듦이 있는 공부입니다. 하지만 우주만유의 근본으로서 본디 시비 선악과 염정 미추가 없는 자성으로 하는 수행은, 위와 같은 분별심을 떠나서 사(私) 없는 빈 마음[일원상]으로하는 공부입니다.

가령 여기 어떤 물건이 하나 있는데, 이것에 대해 아무런 착심이 없으면 내 마음은 이것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습니다. 이 물건이 내 것이 된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나에게서 떠난다 해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없어서 서운할 것도 없고, 있어서 기쁠 것도 없습니다. 대상에 착심이 없으면 중생마저도 위와 같은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대자유를 얻은 부처님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자성(일원상)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 부처는, 에고(我相)가 사라진 완전한 해탈에 머물기 때문에, 좋고 싫음과 같은 번뇌의 티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지어 받는 그 어떤 행·불행(幸不幸)에도 끌림이 없어서, 재색 명리가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이고, 가난이나 모멸, 재난이나 속박을 당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중생이 분별하는 마음으로 유위(有爲)의 업을 지어 그 과보로써 육도를 윤회하는 것과 달리, 부처님은 자성의 공적영지로써 늘 일원상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유상·무상(有相無相) 어디에도 주착함이 없어서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계육도가 평등일미(平等一味)」라고 하였습니다. 유무 선악 생사 귀천 진속(眞俗) 등, 그 어디에도 물듦이 없어서 어디를 가든 고루 한 맛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정역순(動靜逆順)이 무비삼매(無非三昧)」라 하였습니다. 육근을 작용할 때나 작용하지 않을 때나, 처한 형편이 순조로울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선정 삼매(禪定三昧)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대자유, 대해탈의 경지입니다.
 

라도현 교도<br>​​​​​​​화정교당<br>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8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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