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 한국 정치, 그래도 국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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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다 한국 정치, 그래도 국민이라면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1.09.07 23:59
  • 호수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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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br>서울교사회장<br>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
​​​​​​​한겨레중고등학교 교장

“내년에 누굴 뽑아야 하나? 난 딱히 찍을 사람이 없는데.” 우연히 모임에서 꺼낸 친구의 말로 우리 정치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싸우지 않으려면 정치와 종교를 주제로 한 대화는 피해야 하는데, 다행히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면서, 또 한국정치에 대해 공감하는 지점이 있었기에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민생을 살펴야 하는 정치인의 본분은 뒤로한 채, 정쟁으로 점철되어 서로 악다구니를 하는 정치 풍토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정권은 교체되어도 주군과 핵심 실세들만 바뀌었을 뿐 동일한 정치행태가 무한 반복되는, 결코 개선되지 않는 한국정치에 대한 환멸을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센병 환자, 도둑놈, 사이코패스라는 등 상대에 대한 막말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 수위가 금도를 넘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정치판을 비판하면서, 누가 누가 말꼬리 잡기를 더 잘하는지 경쟁이라고 하듯, 철없는 아이들의 유치한 놀이같은 그들의 행태가 매우 씁쓸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여의도에 입성했지만 구태의연한 선배 정치인의 실망스러운 갑질 횡포, 그리고 개선되지 않는 현실정치의 철벽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초심도 열정도 다 사라진 듯한 정치인들과 비방과 억지, 무차별적 독설로 건전한 숙의와 소통의 기회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에서 현실정치에 대한 좌절과 무관심에 익숙해진 국민이 오히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대화도 있었다.
 

서로를 향해 구태정치 운운하면서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정작 현명한 국민의 손가락질은 누구를 향할까?

한마디로 도진개진이다. 그 나물에 그 밥들이

서로 오종종하게 모여 서로 잘났다고 까치발을 들고

내 키가 더 크다고 싸우는 모양새라 칭하면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일까?

그렇다. 요즘 정치판은 마치 고대 그리스에서 횡행했던 소피스트 식의 궤변들이 난무하듯 어지럽다. 합리적 이성과 객관적 근거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미 결론은 정해 놓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침소봉대하고 우선 질러놓고 보는 각종 의혹 제기, 시비는 망각한 채 자신들의 극렬 지지층을 등에 업고 상대에 대한 증오를 확산시키며 억지 궤변을 잔뜩 늘어놓는다. 그것도 상대를 주눅 들게 하려고 큰 소리를 내지르거나 집단적으로 힘을 과시하면서 말이다.

서로를 향해 구태정치 운운하면서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정작 현명한 국민의 손가락질은 누구를 향할까? 한마디로 도진개진이다. 그 나물에 그 밥들이 서로 오종종하게 모여 서로 잘났다고 까치발을 들고 내 키가 더 크다고 싸우는 모양새라 칭하면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일까?

더 세게 더 잔인하게 상대를 압박하고 통쾌하게 한 방 날려 뭉개버려야 그들의 언사가 촌철살인이라고 칭송받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의 극렬 지지층으로부터 박수를 받고 그들을 더 결집해 세를 불릴 수 있다고 맹신할지 모르나 과연 표를 쥐고 있는 대다수 유권자도 같은 생각일까?

국민은 더이상 바보가 아니라고, 법 앞에 평등한 주권자로서, 잘 보고 잘 듣고 잘 판단해야 한다고, 그래야 좋은 정치인이 아니라 최소한 그나마 덜 나쁜 정치인이라도 뽑을 수 있다고, 당선되려고 기를 쓰는 정치인들만의 문제는 아니기에 특히 자신을 극렬 지지층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자신이 쓴 색안경을 내려놓고 밝은 태양 아래서 찬찬히 대권 후보자들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우리의 대화는, 작금의 한국 정치에 대해 실망을 넘어 이제는 무관심으로 진입한 단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인 이상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무관심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지극히 모범적인 언사로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9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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