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교무의 길] 농판처럼
상태바
[군종교무의 길] 농판처럼
  • 강동현 교무
  • 승인 2021.09.14 13:59
  • 호수 1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동현<br>군종교구 칠성교당 교무<br>
강동현
군종교구 칠성교당 교무

농판은 멍청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농판처럼 살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뜻을 대산 종사는 “대도인은 숨기므로 농판 같아 알아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농판을 생각하면 예타원 전이창 종사가 생각난다. 문답감정을 받을 때마다 “무명성자가 되어라” 하고 독려했다.

그러나 스스로 반조해 보면 농판처럼 살기가 어렵다. ‘어리석은 나’ 때문이다. 말 그대로 멍청이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일을 당할 때마다 드는 감상이 있다. ‘인생은 마치 농판의 갈림길에 펼쳐지는 여행과 같구나’라고 말이다.

군 교화에도 농판의 갈림길이 있다. 바로 장병들이 전역할 때다. 대상자에겐 축하해 줄 일이나 교당은 위기의 순간이다. 세대교체를 실패하면 지속가능한 교화동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구성원 모두가 농판이 되는 길을 멀리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전역을 앞둔 교도 장병들에겐 “군 생활의 마무리는 흔적이 없되 흔적이 있어야 한다”라고 방향 제시를 해준다. 구체적으로 주위 인연들과 나쁜 마음의 흔적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이어갈 후임을 인도하여 흔적을 남기라고 지도한다.
 

열심히 마음공부를 했던 교도 장병이 전역하면서

족보를 만들었다. ‘교도 4종의무 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공부에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교도 4종의무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

최근에 이와 관련한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다. 일명 ‘족보 사건’이다. 열심히 마음공부를 했던 교도 장병이 전역하면서 족보를 만들었다. 그 이름은 ‘교도 4종의무 팁’이다. 입수해서 내용을 살펴봤다. 간결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적힌 구절은 많은 영감을 줬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공부에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교도 4종의무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 자신의 4종의무를 만들자.’

이 구절을 되새기며 묵상을 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했던 “그렁저렁 공부하여 천하농판 되어보소”란 말이 떠올랐다. 그렁저렁은 ‘그렇게 저렇게 하는 사이에 어느덧’이란 뜻이다. 정성과 같은 의미다. 소태산 대종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래오래 계속하면’이다.

생각할수록 교도 장병이 천하농판 족보를 만들었다는 감상이 들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의 성(姓)은 바로 일원(一圓)이다”라고 했다. 일원은 천하농판의 성씨이다. 그 성씨를 갖기 위한 묘법은 ‘오래오래 계속하면’이다. 정성만 있으면 누구나 천하농판이 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열반을 앞두고 “멀리 수양하러 떠난다”라는 말과 함께 “내가 숨으면 알 수 있을까?”라고 했다. 그 질문에 조심스레 “농판처럼 되면 알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본다. 그리고 두 손 모아 법신불 전에 다짐한다.

‘농판처럼 살아 보겠습니다’.

9월 17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