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에 담긴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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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에 담긴 양극화
  • 이여진 교도
  • 승인 2021.10.04 22:24
  • 호수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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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50대 이후 세대는 어릴 때 한 번쯤 해봤을 놀이인 ‘오징어 게임’. 흙바닥에 오징어 모양의 아우트라인 그림을 그려놓고 수비와 공격으로 나누어 서로 끌어 잡아당기고, 밀치고 밀어내는 게임이다. 누군가는 과격한 공수비로 때로는 옷이 찢어져 부모님께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있으리라.

최근에 이 오징어 게임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 그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무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경기에서 지면 탈락이 된다고 들었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그 탈락이라는 것이 결국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최후의 승자에게 돌아가는 막대한 상금으로 인생역전 하기를 꿈꾸며, 그들은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잔혹한 게임에 처절하게 매달린다. 그리고 게임이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그들은 인간의 잔인한 본성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참가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쏟는 동안, 이 모든 게임을 화상으로 보면서 즐기는 VIP 관객들은 참가자들이 스릴 있게 죽을 때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모든 게임의 호스트이자 설계자는 스스럼없이 말한다. 돈이 지독히 없는 사람과 돈이 정말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인생에 재미가 없다는 것, 그래서 부자들의 재미를 위해 돈에 굶주린 사람들을 경주마처럼 구경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흥행으로 인해 ‘못 버티면 탈락’이라는 비아냥 섞인 패러디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며 회자되고 있다. 올라가는 집값을 못 버티는 무주택자는 탈락, 증세를 못 버티는 다주택자도 탈락, 사회적 거리두기를 못 버티는 자영업자도 탈락, 물가인상을 못 버티는 서민도 탈락, 과도한 학원비를 못 버티는 수험생도 대입 탈락, 학력 중시 풍조에 못 버티는 대졸자도 취업 탈락 등등.

그중 특히 코로나19 시대 어려운 처지에 몰린 자영업자가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로 가장 많이 비유되곤 한다. 이들은 456명의 드라마 속 그들과 달리 게임에 참가조차 못 하고 탈락하는 존재라는 것이 더 비극적이다. 최근 20여 년이 넘게 호프집을 운영한 자영업자는 코로나 이후 직원 월급과 월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휴대폰에 남아있는 갖가지 채권 요구서와 당장 집을 비우라는 메시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자영업자 대출은 1년 전보다 15% 가까이 증가했고 2021년 2분기에만 자영업자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86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기간에 비은행권 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것은 이들이 문턱이 높은 은행보다는 사채를 빌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반영한 ‘설국열차’, ‘기생충’은 해외에서 이미 주목을 받았고, 그 연장선에 있는 ‘오징어 게임’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병리를 신랄하게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다.

드라마 속,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참가자들은 민주사회의 의사결정 장치인 다수결로 잔인한 게임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게임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의 사악한 이기심과 탐욕은 건전한 이성을 마비시키고 게임을 밀어붙여 결국 최후의 1인을 꿈꾸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우리가 ‘오징어 게임’ 시즌1의 결말을 아쉬워하며 시즌2에서는 ‘배틀로얄’(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벌이는 생존게임)에서 벗어나 상생하는 주인공들을 기대하는 것처럼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러한 결말이 맺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br>​​​​​​​서울교사회장<br>
이여진
강남교당 교도
한겨레중고등학교장
서울교사회장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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