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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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의 진리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1.10.04 22:32
  • 호수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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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지름길 법문1
라도현 교도<br>화정교당<br>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일원(一圓)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며, 대소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로서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十方三界)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자재(隱顯自在)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

‘일원상’은 궁극적 진리를 상징하며, ‘일원상의 진리’는 이 진리를 언어문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과 모양이 ‘일원상’이고, 그에 대한 언어적 설명이 ‘일원상의 진리’인 것으로써, 이것이 진리의 실상(實相)은 아니고, 이 설명이 진리의 완벽한 묘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리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인지능력(人智能力)으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내관적(內觀的) 깨달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과학이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고, 인간의 사유(思惟)가 무한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바깥으로 탐구해서는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내 눈이 눈 자체를 보고 마음이 마음의 본체를 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육식(六識)으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전은 이것을 ‘일원상의 진리’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법문을 통해서 진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할까요. 오히려 진리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관념적 상(相, 이미지)을 갖게 됨으로써, 과거에는 볼 수 있었던 구도자(求道者)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실다운 깨침을 얻는 이가 드물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전에 사의법(四依法)을 설하셨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네 가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첫째,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依法不依人). 둘째,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依意不依語). 셋째, 지혜에 의지하고 식(識)에 의지하지 말라(依智不依識). 넷째, 요의법문(了義法門)에 의지하고 불요의법문(不了義法門)에 의지하지 말라(依了義不依不了義).

지금 이 시대에서도 그대로 통할 수 있는, 수행인을 위한 네 가지 지침입니다.

이에 따른다면 ‘일원상의 진리’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말[語]에 의지하는 것이요, 식(識)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치가 다 끊어져서 유무(有無)가 서로 융통(融通)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고, 이치와 논리를 따라 분별심이 생겨서 사라지지 않게 된다면, ‘일원상의 진리’마저 공부인에게는 방편법문(方便法門)이 됩니다.

명상돈공처 생생약동처 오득일원상 무실무허처(名相頓空處 生生躍動處 悟得一圓相 無實無虛處, 이름과 모양이 끊어진 곳이 생생 약동하는 곳일세 일원상의 진리 깨달으면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네).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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