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처처불상의 은혜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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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처처불상의 은혜 생태계
  • 이삼성
  • 승인 2022.02.07 21:45
  • 호수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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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성 교도<br>안암교당<br>서울시교육청 장학사
이삼성
안암교당 교도·서울시교육청 장학사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가? 아마도 내비게이션을 활용한다고 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과거에는 지도를 펼쳐서 길을 찾았지만, 이제는 내비게이션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길을 찾고 안내하는 ‘인지’는 어디에 있는가? 행위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여러분의 인지작용을 통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따져보면, 최적의 길을 찾고 안내한 것이 내비게이션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내비게이션을 사용한 순간부터 여러분은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암기하거나 지도를 챙길 필요가 없어졌다. 과거였다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할 일종의 ‘길 찾기 인지’가 내비게이션으로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인간과 내비게이션과의 관계에 국한되겠는가? 잠시만 우리의 일상을 살펴보면, 자신과 환경과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관계없이 말이다.

일부 학문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분산인지(distributed cognition)’로 설명해왔다. 분산인지는 인간의 인지가 개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물리적 환경에 분산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물리적 차원에서는 내비게이션과 같이 형상 있는 사물에 인지가 분산되어 있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인지가 분산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분산인지를 잘 활용하는 집단에서는 구성원들 간의 효과적인 협력이 나타난다고 한다. 결국, 분산인지는 우리가 맺고 있는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이자 확장이기도 하다. 분산인지라는 개념의 등장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분산인지 생태계 속에서 운영되어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태계를 원만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

소태산 대종사는 ‘우주만유, 천지·만물·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할 것이며, 천만 사물의 당처에 직접 불공하기를 힘쓰라’고 하셨다. 즉,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다.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부처임을 깨닫는 것, 항상 경외심을 갖는 것,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응하는 것, 당처에 직접 불공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생태계를 원만하게 운영하는 방법인 것이다. 어쩌면 학문 영역에서 사용하는 분산인지의 개념을 우주만유로 포괄하면서도 확장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렇듯 우리는 분산인지를 넘어서는 처처불상의 은혜 생태계 속에서 살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유용한 도구임을 인식하고 잘 관리해야 비로소 그 물건이 자신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듯이, 천만 사물의 은혜로움을 깨닫고 불공해야 그 은혜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최근, 우리 앞에 놓인 각종 환경재앙과 사건사고들이 인간 중심, 개인 중심의 생각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그리고 내 주변의 크고 작은 부처들의 존재를 깨닫고, 불공하는 은혜 생태계를 만들고 가꿔가야 할 것이다.

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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