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대한 시민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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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대한 시민들의 나라
  • 정형은
  • 승인 2022.02.22 19:45
  • 호수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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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정형은 여의도교당 교도(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정형은 여의도교당 교도(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어릴 적 아버지는 학교에서 조사하는 가정환경조사서에 자녀의 장래희망을 ‘평범한 시민’이라고 썼다. 한창 사춘기에 어떻게 살까를 꿈꾸며 한 번뿐인 인생을 뭔가 남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하던 나는 아버지의 희망에 어리둥절했었다. 딸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 그렇고 그렇게 살라는 말씀인가, 별다른 재주와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인가. 훗날 내가 교사가 되어 받아본 학생들의 가정환경조사서에 학부모들은 판검사, 의사, 교수라고 써낸 경우가 절반은 넘었다. 반면 학생들은 연예인, 회사원, 주부라고 써내어 부모들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지금처럼 혁신학교 운동이 일어나기 전 1980년대에 이미 지역사회의 학교로 자리한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는 ‘위대한 평민’이 교훈이었다. 이후 ‘더불어 사는 평민’으로 바뀌었지만 자기가 태어난 땅에 뿌리박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평민의 위대함을 학교의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지금처럼 엘리트를 키우고 특별한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경쟁과 서열로 줄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능력 있으니까 그만한 대우를 받는 거야”라고 불평등한 현실을 감수하도록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사회 풍조와 사뭇 다른 교육을 꿈꾼 학교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한 것은 엘리트도 인재도 왕도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조선이 몰락해갈 때 동학혁명을 일으킨 민초들과 1919년 3·1운동은 멀리 동서양의 많은 나라에 평화적 저항의 힘을 보여줬다. 해방 후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가장 최근에는 2016년 다시 거리의 촛불로 쏟아져 나온 위대한 시민들을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 장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전쟁을 겪은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경제력 규모 10위권에 들 만큼 성장하고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 밖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선진국이 되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시민들은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하고 마스크를 기꺼이 쓰며 불편을 감수해왔다. 물건을 놓고 가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 되찾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밤길이 위험하지 않고 치안이 유지되는 안전한 나라에 속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며칠 전 백낙청 선생은 오마이 TV와의 대담에서 우리 국민의 선한 기운과 당당한 기상이 살아있는데 그 시민들이 올라올 수 없게 하는 강력한 엘리트 카르텔의 문제를 지적했다. 여전히 복지가 부족하고 노인과 청소년의 자살률이 높으며, 성별·계층별 불평등이 심화하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오랜 분단체제는 살아있는 시민들의 진출을 가로막고, 합리적인 이성과 진실이 작동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에 충실하게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고 받들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해 나아갈 지도자는 누구일까. 헌법 전문에 나오는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도록 마음을 다해 봉사할 후보는 누구인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선한 기운과 당당한 기상이 살아있는 위대한 시민들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2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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