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고동락은 생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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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고동락은 생명력이다
  • 전종만
  • 승인 2022.03.15 10:00
  • 호수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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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만 수원교당 교도<br>하나병원 원장
전종만 수원교당 교도
하나병원 원장

작년 말 ‘다수의 수다’라는 JTBC 예능프로그램에 대한민국 4대 종교의 성직자들이 출연했다.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놓은 자리에서 각 종교의 운영방식을 사업형태에 비유한 것이 화제가 됐다.

개신교는 개인사업자, 천주교는 직영점, 불교는 프랜차이즈와 유사하고 원불교는 스타트업에 비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불교를 대표해 출연한 박세웅 교무는 모든 스타트업들이 그러하듯 원불교도 지금은 1인 다역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했다. 스타트업은 부족한 자금과 역량을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일당백의 열정으로 메워간다. 창업 초기의 생고생은 필수이고 좌절은 필연이다. 가끔 선물 같은 기쁨이 빛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시련이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원산 서대원 대봉도는 소태산 대종사를 잘 보필하겠다는 뜻에서 산중에 들어가 불경 공부를 하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대종사께서는 ‘도를 구하기 위해 출가한 사람이 외학(外學)과 외지(外知)를 구하는데 정신을 쓰면 참 지혜를 얻기 어렵다’며 경계를 하셨기에 그의 입산을 크게 나무랐고 총부의 대중들도 그를 규탄했다. 결국 교단에서는 회의 끝에 그를 제명하기로 결의하고 제명결의서를 대종사께 제출했다.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결의서를 찢고 호통치며 말씀하셨다. ‘이 종이를 재도 남기지 말고 불살라 버려라. 내가 아무리 대원이를 꾸짖는다 할지라도, 그대들은 나에게 입산의 뜻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상을 위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해야지 내보내자는 회의를 하다니, 그렇게 내 뜻을 모르고 동지애도 없다는 말이냐!’ 이 일화는 새 회상 만난 기쁨이 아무리 충만하더라도 간난한 시기를 함께 이겨나가려는 단단한 동지애가 없다면 오래도록 더 큰 일을 해낼 수 없다는 소태산 대종사의 절절한 가르침을 보여준다.

‘빈천지교불가망 조강지처불하당’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하고 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갈라설 수 없다는 뜻이다. OECD 회원국 중 이혼율 9위, 하루 평균 300쌍이 이혼을 하는 대한민국. 연애할 때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상대의 좋은 면만 보고 좋은 것만 나누다가 함께 살면서 그 사람의 전체를 알게 되면 실망하고 갈라서는 부부가 해마다 늘고 있다. 기쁨과 즐거움뿐 아니라 아픔과 고통도 함께하려는 마음 없이는 오래 두고 같이 갈 수 없다. 친구든 배우자든 오랜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아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고동락하겠다는 동지애는 우리가 한 몸이라는 자각에서 나온다. 몸의 어느 곳에 작은 벌레 한 마리만 기어 다녀도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수 있다. 신경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다리에 상처가 났을 때 그것은 다리의 일이라며 손이 가만있지는 않는다. 세상의 모든 생령들도 몸의 신경망처럼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아프리카의 굶주림이 남의 일이 될 수 없다. 괴로운 일을 당할 때 그 괴로움을 같이하고 즐거운 일을 당할 때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 전체의 삶이 되고 전체의 생활이 되자는 것이 바로 동지애이고 동고동락하는 마음이다. 국가든 교단이든 교당이든 힘들고 아픈 순간들도 기꺼이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긴 생명력을 갖고 더 큰 하나로 맺어질 것이다.

3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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