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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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로나 명상
  • 한울안신문
  • 승인 2022.03.23 17:01
  • 호수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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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칼럼
정형은 여의도교당 교도(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정형은 여의도교당 교도(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드디어 나도 딱 걸렸다. 자가진단 해보니 두 줄 양성 반응이 나왔다. 구순 넘은 아버지와 간병 이모가 음성인지라 내가 짐을 싸들고 빈집을 찾아 나섰다. 동굴생활을 열흘 하면서 온전히 나 홀로 지냈다. 언제였던가. 다른 사람을 일절 만나지 않고 산다는 것이. 한창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모든 게 정지하자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전화로 급한 일, 가족들 챙기는 일을 하고 나서 그동안 밀린 일을 하면서 점점 혼자만의 생활에 젖어들었다.

3월 9일 동굴생활을 시작해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사였던 대통령선거 개표 방송을 새벽 4시까지 지켜봤다.

사상 초유의 작은 표차로 당락이 엇갈린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희망은 격렬했지만,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호수 같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자. 8년 전 히말라야에 갔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의 대화를 위해 보름간 네팔로 떠나 그저 걷고 또 걸었었다. 바쁘게 달려온 내 삶을 돌아보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묻고 또 물었다. 문득 히말라야의 여신이 대답하듯 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코로나 명상은 뜻하지 않은 답을 줬다. 나중으로 미룬 귀농을 지금 떠나는 게 좋겠다고. 아버지께도 맑은 공기, 따사로운 햇살, 빛나는 밤하늘의 별과 달, 날마다 자라는 식물들이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게다가 마을을 만들어 여러 집이 함께 살기로 하였으니 문밖에 나서면 웃는 얼굴로 인사 나누는 정다운 이웃과 마주할 것이라고.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첫 번째 후회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회갑이 넘었으니 내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삶을 전환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빠를수록 좋을 터이다. 천지은·부모은·동포은에 보답하고, 자연과 마을 속에서 자급자립하며 서로 어울려 살라는 코로나의 경고를 실천에 옮겨보는 거다.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던 대안을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보는 거다!

무사 귀환하여 반갑게 아버지를 뵙고, 다음날 눈발 흩날리는 파주로 달려가 하얗게 눈 덮인 공동체 밭에 도착했다. 항아리 뚜껑에 정성스레 흙과 물을 담아 떡시루와 함께 상을 차리고 한 해 농사를 기원하는 시농제를 올렸다. 연세가 가장 많은 천호균님이 밤새 준비한 기원문을 낭독하자 다 같이 손을 모아 마음 깊이 기도하며 절을 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범 내려오는 평범의 해 3월 19일에 하늘, 땅, 물, 바람, 햇살, 그리고 땅속에 깃들어 사는 벌레, 미생물, 생명이 있는 모든 님들에게 고마워하며 농사를 시작하려 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자연을 느끼고 만물을 배려하라고 지혜라는 더듬이를 주었지요. 그러나 문명중독과 인간의 탐욕이 그 더듬이를 무디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흙을 살리며 농사를 짓다 보면 그 더듬이가 조금씩 자라나 오랜 가뭄에 단비를 맞으면 내 몸이 마치 식물인양 상쾌하고 시원해지지요. 이것이 더듬이가 살아나 자연과 공감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농사를 지으며 이 더듬이를 회복하여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사랑이라는 창의력으로 그 생명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생태적 삶을 살기 위하여 이곳 남과 북이 마주하는 접경지대에 모였습니다.

예술은 경계를 허물고 농사는 경계를 포용합니다. 예술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농사는 세상을 구합니다. 예술로 농사짓고 농사로 평화짓는 평화마을짓자의 진심을 담아 생명·생태·평화를 다짐하는 시농제를 시작합니다.”

3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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