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食, 먹는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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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食, 먹는다는 것의 의미
  • 한울안신문
  • 승인 2022.05.18 13:10
  • 호수 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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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법명 원선) 교도의학 박사·금빛한의원장
이정화(법명 원선) 교도의학 박사·금빛한의원장

어릴 적 사물을 판단할 즈음에 멸치볶음을 보면서 눈도 못 감고 죽은 것 같은 멸치네 가족이 안쓰럽게 느껴졌고, 익어버린 쌀알이 뜨거웠을 것을 상상하니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내게 밥상은 처참한 주검들의 들판이었다. 도무지 밥을 먹을 수가 없었고 억지로라도 먹고 나면 어김없이 배가 아파 식사 때가 되면 밥상 앞에서 울면서 밥 먹는 것을 거부하여 어지간히도 부모님 속을 썩였다. 식사 때 울던 버릇은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과 회초리 덕분에 나아졌지만, 이후로도 텃밭의 상추를 뜯을 때나 내가 좋아한 달걀찜을 먹을 때도 가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가능하면 동물성 약재는 쓰지 않으려 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끊는다는 것이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내게 먹는다는 것은 다른 생명에게 빚을 지는 미안한 일이었고 다른 것을 먹어야만 나라는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먹지 않고 살 방법은 없을까? 단식도 해보았지만, 영원히 굶을 수는 없었다.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고통을 끊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큰 스승께서 물으셨다. “왜 가을에 과일이 먹음직하고 향기 나게 익어갈까? 마치 곱게 화장하고 손짓하여 지나가는 나그네를 유혹하듯이….”‘

그래 이상하다. 자신을 보호하려면 눈에 띄지 않게 하고 맛이 없어야 하는데…. 식물은 식물로써 진화의 한계가 있기에 더 상위차원의 존재에게 먹힘으로써 그의 피와 살로 기화되어 그의 일부가 되고 이로써 진화하는 것이다. 그렇구나. 만물은 서로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진화를 돕는 사랑의 관계이구나’

잘 익은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린 복숭아나무가 있다고 하자. 지나가던 부처가 복숭아을 따서 먹었다면 그것은 부처의 피와 살이 되어 부처의 일부가 된 것인데, 이보다 더 성공한 복숭아의 진급이 있을까?

반대로 도둑이 지나가다 복숭아를 따 먹으면 도둑의 피와 살이 된 복숭아는 이보다 원통한 일이 있겠는가? 또한, 도둑은 자신의 죄업에 복숭아가 일생을 바쳐 자신을 맛있게 성장시킨 노고를 망친 죄업까지 더했으니 살기 위해 먹은 것이 오히려 죄를 더 하게 되니 참으로 불쌍한 노릇이다.

먹는다는 것은 내가 먹은 모든 생명의 진화까지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고, 식사 전의 기도는 이러한 맹세의 거룩한 의식이다.

치열한 자신의 일생을 오롯이 내게 바친 여러 생명들. 이들의 지극한 공양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5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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