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4축 2재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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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4축 2재의 문화?
  • 한덕천 발행인
  • 승인 2022.06.02 19:11
  • 호수 12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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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위단회에서 교단의 4축 2재에 대한 재검토가 논의되고 있다. 의례는 ‘몸을 통한 상징적 행위이자 의미 전달의 수단’인 것이다. 의례는 인간이 자기가 믿고 행하는 것을 어떻게 몸으로 상징화시키는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몸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은 몸을 통해 자기가 지향하는 어떤 세계를 구현해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의례연구자 벨(C. Bell) 역시 의례가 ‘교리나 믿음보다 종교에 더 가까이 있는 유형의 증거물이자, 교리적 믿음이 진실이냐 거짓이냐의 물음과 상관없이 종교의 역동성을 탐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는 의례를 통해서 비로소 완결된다’고까지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종교의 기초는 의례이며, 의례는 다른 매개체가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경험들을 상징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는 말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4축 2재는 당일 기념식을 거행하는 것보다 그 정신과 의미를 몸의 상징적 행위와 몸짓을 통해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최소한 일주일 전에 그 기념일의 의미를 묵상하며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4축 2재 문화 만들기가 중요함을 생각하고 기념일마다 1주일간 기념일에 맞는 정진 기간을 시도해왔다. 앞으로 공감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 만들기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서울교구에서는 동행프로젝트로 4축 2재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4축 2재의 의미를 더욱 살려내고 교단의 공통적인 공감력을 높이고자 많은 수고로움을 투자한 것이다.

그리고 기념일은 코로나로 인해 편의적으로 변경하기도 했는데, 편의를 쫓다 보면 의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원불교적 의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의를 추구하다 보면 원불교의 문화는 정립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산종사의 [예를 밝히는데 만고에 바꾸지 아니할 예의 체가 있고 수시로 변역할 예의 용이 있나니, 예의 체를 바꾸면 그 법이 서지 못하고 예의 용을 수시로 변역할 줄 모르면 그 법이 쓰이지 못하나니라.]는 말씀을 유념했으면 좋겠다.

6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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