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화100년기념 서울성적지 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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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화100년기념 서울성적지 연구보고서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4.17 12:41
  • 호수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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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 천도품 6장 … 조선박람회장 화재보험 시설 감상을 수록 

길산 방길튼 안산국제교당 교무

 

소태산 대종사가 서울에 오신 100주년을 맞이하여, 필자는 서울원문화해설단 박혜현 단장 및 윤지승 단원과 함께 ‘서울성적지연구회(가칭)’를 조직하여 지난 3월 4일(월)에 「제1회 서울 성적지 연구보고서」를 발표한바 있다. 이 연구보고서에 따라 매달 서울의 성적지 한곳을 선정하여 공동 연구한 내용을 공유코자 한다.
먼저 소태산 대종사가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박람회를 관람하고 법문의 소재로 사용한 2곳과 관람 노선을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매달 성적지 한 곳 선정, 공동연구내용 공유 
조선박람회장 화재보험 시설 및 사회·경제관

『대종경』 천도품 6장의 현장. 조선박람회장 화재보험 선전시설 
일제는 경복궁 전각들을 해체하여 이 빈터에 조선박람회(1929.9.12.~10.31. 50일간)를 개최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1929년 10월 말에 박람회 시설을 관람한다. 아마도 10월 31일은 폐막하는 날이라 폐막 하루 전인 30일에 관람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종경』 천도품 6장에 조선박람회(서울박람회)의 화재보험 선전시설을 보신 감상이 등장한다. 이 법설은 송도성 수필로 ‘기틀을 알면 편안한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월말통신〉 28·29호, 시창15년(1930) 6월에 실리며, 이를 『대종경』 천도품 6장에 정선하여 수록한다. 

 

무진戊辰[1929년인 己巳년의 오기] (음력) 9월경에 종사주께옵서 상경하시와, 당시 개최 중에 있던 ‘조선박람회’를 보시고 익산 본관으로 환가하시어 제자에게 박람회 관람에 대한 감상을 말씀하시니 아래와 같더라.
「내가 이번에 상경한 것은 박람회 관람이 참 목적이 아니라, 회무상 부득이한 긴관사緊觀事[경성출장소 제4대 교무 김광선 부임]가 있어 갔다가 여러 사람의 권고에 의하여 잠깐 입장入場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관찰이 충분치 못하였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관찰하던 중 한 가지 감상된 바가 있었으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제군과 그 감상을 나누려 하나니 그 감상된 바는 다름 아니라, 회장會場을 돌아 한편 구석에 이른 즉 아마 그것이 화재보험회사의 설비물인 것이었다. …」 하시더라.

조선총독부에서 1930년에 발행한 『조선박람회기념사진첩』(1929년 조선을 박람하다 1,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옮김, 소명출판사, 2018) ‘제22. 사회·경제관 내부 2’(59쪽)에 조선화재보험회사 출품 모형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사진에 편안한 거주를 위해서는 위험을 대비(思, 생각)하라는 뜻의 ‘居安思危’라는 편액이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화재보험 선전시설로 『대종경』 천도품 6장의 감상처로 여겨진다. 
1929년 9월 12일 조선박람회 경성협찬회에서 발행한 ‘조선박람회 안내도’(뒷면)에 따르면, 소태산 대종사가 관람한 사회·경제관의 조선화재보험회사 선전시설은 현재의 경복궁 생물방과 자경전 사이 통로에 위치한다. 
소태산은 경복궁을 관람하면서 일제가 궁궐의 전각을 해체하여 그곳에 자신들의 조선강점을 정당화시키려는 문화정치의 선전시설을 직면한다. 또한 일제를 통해 물질문명이 도도하게 육박해 오는 현장도 눈여겨보게 된다.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야욕을 지혜롭게 해소해 가는 한편 물질문명의 이기를 선용하면서도 항복시켜야 하는 과제상황에 당면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역사 현장 속에서 소태산은 생사에 물들지 않는 자리에 근원하여 생사에 자유하고 고락 속에서 정당한 고락의 길을 개척하자는 정신개벽의 감상을 제자들에게 법문한다. 

 

 

4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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