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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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바다에서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7.03 11:31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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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타원 안혜연 금천교당 교무

 

“다 큰 처녀들이 벌건 대낮에 메리야스 바람으로 냇가에서 멱을 감아?” 

느닷없는 선생님의 폭로에 몇몇 친구들이 뜨끔했다. 누구 누구라고 지목한건 아니었지만, 그중엔 나도 있었다.  ‘하필 그때 선생님이 냇가를 지날게 뭐람…’ 

다 큰 처녀와 어린이의 경계선 쯤에 있던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다음 해 여름이면 더 이상, 어린이라 우길수도 없을 것 같은데, 선생님께 들켰다고 물놀이를 졸업하기는 아쉬웠다. 시간대를 바꾸었다. 어둠을 기다렸다. 냇가에서의 밤 수영을 한동안 계속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걱정될 일인데, 그때만 해도 저녁을 먹은 후 삼삼오오 모여 냇가에 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멋짐과 속도를 따지지 않고, 물에 떠서 손발을 이용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수영이라 정의한다면 난 아주 조금 수영을 할 수 있다. 배운 바 없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저절로 터득한 실력이다. 

한 동기 교무는 내가 하는 수영을 개헤엄이라고 놀리면서도 “언니는 그래도 물에 빠지면 떠 있을 순 있잖아” 라고 했다. 일단 생존은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그런데 나도 자신이 없다. 내 수영 실력이 생존을 보장할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적이 있다. 스노우쿨링을 하다 해류에 밀려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가 저만큼 멀어진 배를 보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늘 놀던 냇물의 익숙함, 혹 무슨 일이 생긴다면 물이야 좀 먹겠지만 구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곳에서는 장담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대종사님께서는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원불교를 개교하셨다. 파란고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마음의 훈련법을 밝혀 주셨다. 

평범한 일상이라면 공부심도 잘 챙길수 있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 크고 작은 경계를 만날 수밖에 없는 삶의 바다인데, 거친 경계를 만나게 된다면, 가라앉는 마음을 살려낼 수 있을까. 그 경계의 파도를 헤쳐 나올만한 실력은 갖추었을까. 마음도 훈련이 필요한 이유다.

대종사님께서는 일이 없을 때에는 항상 일 있을 때에 할 것을 준비하고 일이 있을 때에는 항상 일 없을 때의 심경을 가져서 만일 일 없을 때에 일 있을 때의 준비가 없으면 일을 당하여 창황 전도(蒼惶顚倒)함을 면하지 못 할 것이요, 일 있을 때에 일 없을 때의 심경을 가지지 못한다면 마침내 판국에 얽매인 사람이 되고 만다는 가르침도 알려주셨다.

시원한 물놀이가 제격인 여름이다. 잔잔하기만 한 바다가 어디 있으랴.  때론 높고 때론 낮은 파도가 그동안 갈고 닦은 수영 실력을 빛나게 하는 거지. 

굴곡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때때로 밀려오는 크고 작은 경계가 우리 공부의 빛을 발하게 하는거지. 

육신의 수영 실력뿐 아니라 파란고해를 헤쳐 나올 수 있을 마음의 수영실력을 갖추어야 할 때다. 여름도 공부인의 계절이다. 

 

 

7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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