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있다. 무심하게 뜬 구름 아래 나뭇가지 속에서 아직 짝을 만나지 못한 매미의 소리가 절절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어두워지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것이 계절이 교차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산뜻한 바람도 불고 어디론가 떠나 보고픈 마음이 일어나는 시절이 도래하고 있다. 새로운 계절에 여행의 진수를 맛보려면 7가지 수칙이 있다. 이 수칙만 잘 지키면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첫째, 여행 가방이 크면 그 짐으로 고달프다. 간편하고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간다.
둘째, 사진에 집착하다 보면 정말 깊이있게 바라보며 생각할 볼거리를 놓칠 수 있다. 그냥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바람·햇살 등도 많다.
셋째, 계획을 세우되 그 계획에 구속되어 끌려다니지 말라. 무계획도 문제이지만 너무 빡빡한 계획은 더 큰 구속이다.
넷째,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사람은 환경의 산물이므로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지 말자.
다섯째, 뜻밖의 행운을 타인에게 주는 사람이 되자. 혹여 불미스럽게 작은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타인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때도 그에게 보시를 했다고 치고 착한 일 했다고 여겨 버리자.
여섯째, 일기를 길게 쓰지 말자. 하루에 중요한 한두 가지의 기록만으로 충분하다. 굳이 일기가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
마지막 일곱번째는 조금 멀리 보고 일상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자. 마치 동심의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지내도 좋겠다.
이 수칙은 어느 깨달음을 얻은 수도인의 말씀이 아니다. 언제인가 어디서 보았던 여행 수칙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삶의 수칙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한 생도 영생을 놓고 보면 지구 여행 중인 셈이다. 어느 곳에서 떠나지 않고 한 생을 마치는 사람이나 여기저기 떠돌며 타지를 여행하는 사람이나 똑같다. 언제 어느 곳이나 그 시간과 장소를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정한 장소나 지위에서 조금만 기득권이 생겨도 그것을 사수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고달프게 산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영원할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 계절은 가을이라고 해도 폭염이 존재한다. 그러나 틀림없이 가을은 오고 있다. 가을을 이기는 여름을 본적이 없다. 그것이 진리다. 우리의 일상에서 웃음 잃지 않고 가을바람 타고서 여행을 떠나듯이 행복도 희망도 솔솔 불어오는 시절을 만났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태풍 종다리가 여행객처럼 다녀갔다. 이름처럼 비 몇번 뿌리고 나무 몇 번 흔들고 지나갔다. 우리가 언제나 예측가능한 삶을 살아본 적 없지만 여행의 수칙만 잘 지켜도 무리 없지 않을까 싶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이 맑아 저렇게 별들이 빛나는 것처럼 아무런 표정 없이 눈부시게 맑고 밝아서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린 동안 명절이 찾아오는 길가에 코스모스 한들거리고 그 위에 고추잠자리 날아다닐 것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살고 비가 그치면 또 그친 대로 사는 것 밖에 무슨 별난 수 가 있을 것 같지 않다.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