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화 100년 교당 탐방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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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화 100년 교당 탐방을 마치며…
  • 박순용 편집장
  • 승인 2024.10.02 22:42
  • 호수 13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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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년 서울에 오신 소태산 대종사의 서울교화가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근대사회 속 경성은 AI시대의 서울로 국제사회의 중심이라고 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서울교구는 원불교가 서울에서 또는 현대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세속과 함께 할 것인가를 고민해 왔다.
특히 이산 한덕천 서울교구장은 원기 104년부터 원불교의 교화가 서울에서 문화의 옷을 입고 원불교의 인지도를 높여 나가면 세속사회에서의 원불교 호감도는 덩달아 좋아지고 소태산 대종사가 원기 원년에 꾸었던 꿈을 구현해 갈 것으로 보아 다양한 교화정책들을 펴왔다.
한울안신문도 서울 교화 100년을 기점으로 내가 다니는 교당 뿐만 아니라 서울교구 내 교당들의 어제를 보고 오늘을 살펴 내일을 준비하고자 기획을 마련, 서울교구내  55개 교당 탐방을 해왔다.
육타원 이동진화 선진의 신심으로 시작된 창신동에서 태동하여 돈암동회관을 거쳐 100년 교당이 된 서울교당을 필두로 원기108년 봉불식을 마친 이번 호의 역삼교당까지 55개 교당 탐방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창립 연도별 교당 탐방은 개인적으로도 또다른 기회이기도 했고 한울안신문에서 다룬 적 없는 교당을 찾아다니면서 현재 지역의 직면한 어려운 상황들을 볼 수도 있었고 교당탐방을 거절당하면서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것 하나는 교당을 지키고 만들어 나가는 출가재가교도들의 하나 된 신심과 공심이었다. 
 원기 108년 5월 19일 서울교당을 시작으로 매주 한울안신문을 통해 원기 109년 10월 4일자로 마무리 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일정을 생각하노라면 지나간 55개 교당의 교도들과 주임 교무님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몸살기운이 있어 코를 훌쩍이며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취재와 기사작성에 열과 성을 다했으나 오타로 인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일도 있었다. 용인에서 경기도 끝까지 꼭두새벽부터 운전하여 교당을 찾아갔던 일들은 벌써 추억이 되었다.
길을 잘못들어 먼거리를 둘러온 일들은 다반사이며 아직도 납부하지 못한 어린이 보호구역 위반 과태료고지서로  기억되는 교당도 있다.
멀거나 가깝거나 교당에서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 준 모든 교당 교무님과 교도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전한다
서울교화 100년 기념 교당탐방을 마치며 나에게는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다. 소태산 대종사가 꿈꾸던 서울교화의 또다른 꿈을 함께 꾸는 일은 물론이고 교당들이 꿈꾸는 일에 마음을 다시 보태보는 것이다.
 그동안 교당 탐방을 애독해 주신 한울안신문 독자들께 감사를 전한다.

 

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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