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반대말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빛의 반대는 어둠 이겠지요? 흑백 논리는 나쁜 것이라고 수천 년을 이야기해도 선거철만 되면 판치는 흑백 논리야말로 대비(콘트라스트) 기법의 정수입니다. 그렇지만 대비의 기법 없이는 그 어떤 의사 전달도 시작되기 어렵습니다.
“앗! 올해도 모기에 물리다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일본 하이쿠의 한 구절입니다. 여름의 불청객 모기에게 물리면 불쾌하고 짜증이 나야 할 순간에 삶의 종지부를 찍는 여유의 일갈을 젊음은 모를 것입니다. 어느 노인(老人)의 간절함이 짜증을 유쾌하게 대비시키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늘 하고 있는 마음 돌리기의 기본이 되겠지요.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 원망의 반대말은 감사, 그러나 제 생각에는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함으로 생각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받는 모든 배려가 감사한 일일 텐데 그것을 당연함이라고 한다면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삶이 척박하고 메마른 정서적 궁핍으로 허기진 마음으로 채워질까요? 그러나 그 당연함도 그만두고 원망할 자리에도 감사로 돌리라는 일상 수행의 요법 5조는 우리들의 삶을 무한하게 빛나고 윤기 흐르는 시간으로 초대하는 것은 원망의 마음을 감사의 마음으로 돌리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마음 한 자락을 돌리고 나서 드는 그 느낌은 맑은 가을 하늘에 고여진 깨끗한 공기의 흐름 같은 것이겠지요. 그 상쾌한 마음은 색채나 냄새로는 표현해 낼 기술이 없습니다.
희극인 찰리 채플린은 ‘ 타인의 인생을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을 했지요. 누구나 타인을 먼 거리에서 보면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고 멋져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누구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만큼의 무게와 고통이 존재합니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자신이 만든 무대가 현실의 삶이라는 것과 비교 또는 대비(콘트라스트)하는 것으로 하여 공연히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습니다.
색의 대비는 또 어떨까요? 빨간색을 정열의 빛이라 하여 사랑을 말하고 평화를 초록색이라고 한다면 은혜의 빛깔은 어떤 색일지 살펴볼 일입니다. 은혜의 피조물로 태어나고 살아가는 우리는 소태산 대각비에 새겨진 ‘ 만 고 일 월 ’ 영원한 세월 동안 해와 달처럼 살자고 하신 은혜의 색채입니다. 해와 달의 색채는 무궁한 세월의 빛으로 금빛이며 은빛이고 찬란하고 눈부신 빛깔입니다. 그 어느 곳이나 가리지 않고 내려 주시는 은혜의 빛. 하늘에 홀로 떠서 지는 외로움은 허공 법계의 만물을 기르는 원력으로 흐르는 것이겠지요.
그 빛은 그 어떤 흑백 논리도 색깔론도 모두 감싸 안고 무색 채로 만들며 무한한 허공 법계의 찬란한 천지 하감 지위의 은혜 빛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울안 한 이치와 한집안 한 권속임을 (정산종사 게송)에서 일러 주셨듯이 잊지 말며 살아갈 일입니다. 요즘 저녁 창가로 스며드는 고요한 푸른 달빛과 산들바람, 유리알처럼 파랗게 개인 하늘에 포근한 가을볕이 내리비치는 골목길,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는 허공을 우러러보며 본연 청정한 순수한 마음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 찬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가을꽃처럼 청초하고 정다운 우리들 이기를 서원해 봅니다.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