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모님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난 형제들이, 부모님의 합동 열반기념제를 모시는 날이었다. 과일을 먹는데 홍시와 단감에 먼저 손이 간다.
고향집 담벼락을 따라 빙둘러 감나무가 있었다. 키 작은 단감 나무도 있었다. 작은 나무지만, 제법 많은 감이 열렸다. 풋감 티를 살짝 벗어날 때부터 단감의 정체성을 갖추고 있던 그 나무의 단감은 일찌감치 듬성듬성해졌다. 설익은 단맛이었지만 난 지금도 그 맛을 기억한다.
높은 곳의 감을 따려면 대나무로 만든 장대가 필요했다. 학교에 갔다 온 언니와 나는 장대를 찾아들고 감나무로 갔다. 언니가 감을 따면 나는 그 감을 받았다. 언니 눈을 피해 잎사귀 사이에 숨은 감을 찾아 “조~오기, 요기도 있다” 짚어 주기도 했다. 감을 먹기 위해선 그 정도 도움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름 터득한 염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언니가 우리집 일을 도와주던 아저씨를 만났단다. 그 아저씨의 말이 “아 그 감 잘 따던~ ?” 이었단다. 우리가 꽤 감나무를 사랑하긴 했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에 교당이 있었다. 일요일은 물론 학교를 마친 후에도 수시로 교당에 갔다. 교당에 가는 것이 좋았다. 향냄새도 좋았고, 풍금을 칠 수도 있었다. 밥때가 되면 눈치도 보지 않고 당연한 듯 숟가락을 들었다. 특별한 반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교당 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법당을 청소하면 다음 생에 예쁘게 태어난단다” 라는 교무님의 말씀에 친구들과 함께, 엉덩이를 쳐들고 경주하듯 손걸레로 법당 바닥을 밀며 달렸다. 교당에서는 청소도 놀이가 되었다.
교무님은 방 한 쪽에 길을 낸 듯 줄을 지어 기어가는 개미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얼른 도망가라. 안그러면 약 뿌려야 된다.”
‘단정한 외모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법당 청소를 열심히 해야 하고, 살생도 함부로 하면 안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심어졌다. 나중에 업보차별경에서 교무님이 나에게 심어준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가운 단감과 홍시의 맛, 알게 모르게 받아들여진 가르침의 시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몸이 아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 생각나는 맛, 저절로 되어 지는 생각이나 행동도 어린 시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산종사님은, 회룡고조라는 말은 산의 지맥이 뻗어 내려오다 그 본산을 돌아다 보는 형국이라 하셨다. 그 근본을 잊지 않고 돌아보기에 그 기운이 승한것이라 하셨다.
종법사 대사식을 앞두고 있다. 새 종법사님께 향하는 재가·출가 교도들의 바람이 수도 없을거다. 그 수많은 바람에 나의 바람도 하나 보태고 싶다.
초기 교단 분위기 속에서 선진님들의 훈증을 그대로 받으셨을 새 종법사님! 초창기 교단의 정신과 분위기에 바탕한 혁신으로 재가·출가 교도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널리 세상을 은혜롭게 하는 원불교로 이끌어 주소서!
11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