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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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아이들
  • 전지만
  • 승인 2001.04.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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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상처는 아이 혼자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 마지드 마지디


「천국의 아이들」은 돈에 멍든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 가운데 있는 그대로 동심을 그린다. 그리고 동심을 통하여 험악한 세상이 어떻게 승화(昇華)되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아버지는 벌이가 시원치 않고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 삯월세를 밀린지도 5개월이 지난, 가난
한 집 아들 알리는 어느날 동생의 구두를 고치고 오다 신을 잃어버린다. 알리는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동생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며, 자신의 운동화를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동생
과 번갈아 신고 학교에 다닌다. 그러니 알리의 가장 큰 소망은 여동생에게 새신발을 구해주
는 것. 그러다 어린이 전국마라톤대회에 나가게 되는데, 3등 상품이 운동화다. 알리는 드디
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회에 나가지만 운동화를 탈 수 없다.
이것이 줄거리인데, 감독은 이런 줄기에 인간이 살면서 지키고 보존해야 할 덕목과 빈부격
차가 심한 세상(물질의 노예화된 세상), 그리고 그런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암시
한다.
‘신발 하나에 목숨거는 알리’는 단순히 순수한 동심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왜 다른 아
이들은 좋은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있는데, 알리와 그 여동생만 꾀죄죄한 운동화를 번갈아
신지 않으면 안될까. 감독은 그 이유를 부자마을로 알리부자(父子)를 데리고 가서 보여준다.
정원 손보는 기계를 우연히 이웃으로부터 얻게 된 알리 아버지는 부업이라도 해볼 양으로
부자 마을을 향한다. 부서지기 직전의 자전거에 알리를 태우고 고가도로를 휘휘 저어가는
알리부자를 통해 관객은 이란에서 미국으로 촬영장이 바뀐 것은 아닌지 잠시 혼동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유럽의 멋진 주택가에 뒤지지 않는 이란의 부유층, 곳곳을 보여준다. 꼭꼭 잠
긴 부자집, 그 부잣집 초인종을 누르다 못해 지친 알리 부자의 모습을 배경으로 감독은 서
글픈 음악을 조용히 흘려보낸다.
이 영화의 큰 줄거리는 신발 때문도 어린 아이의 순수한 동심 때문만도 아닌, 가난한 삶이
만들어낸, ‘알리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알리 아버지가 어쩌다 정말 운수좋게 일
을 구해 큰 돈을 벌었지만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나 결국 트럭에 실려오는
신세가 되는 장면은 극복하기 어려운 계층과 계층의 벽을 상징처럼 나타내고 있다.
이런 ‘분노’는 마라톤까지 이어진다.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의 플레시를 받는 알리는 얼굴
을 들어 달라는 선생님과 기자들의 요구를 좀체로 듣지 않다가 반강제로 얼굴을 들지만, 그
것은 단순히 운동화를 타지 못했다는 슬픔, 분노가 아니다. 영화가 지금까지 끌고온 수많은
이야기들의 결말, 돈의 노예가 된 세상,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유린하는 자본주
의적 가치관,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소박한 행복과 이란 민족의 고유한 미풍양속, 아이들의
삶마저 갉아 먹고 있는 것이다. 알리의 눈물과 분노는 바로 이런 것을 상징한다.
알리는 터덜 터덜 집으로 돌아 온다. 힘없이 분수대에 걸터앉아 운동화를 벗으니, 발의 곳곳
은 물집이 들고 터져 있다. 관객은 가슴이 메어진다. 아이의 상처는 아이 혼자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런 모든 갈등을 상징적이고 음유적으로 풀어간다. 원래 요란함이 없는 자리, 분수
대에 걸터앉은 알리의 발을 수중촬영하여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
시 카메라는 법신불(法身佛) 위치로 올라가 알리를 내려다본다. 카메라는 이어 수중으로 들
어가 알리의 상처받은 발을 감싸는 작은 붕어들을 비춤으로서 은혜(恩惠)의 광명을 보여준
다.
빈부격차는 부당하게 부가 독점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참된 본성을 잃
은데서 생기는 결과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천국의 아이들」을 통해, ‘천국’이 지상에서
어떻게 유린되며, 그러면서도 천국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지키고 실현하는지 볼 수 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뼈를 깎는 정성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박동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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