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상태바
집으로
  • 전재만
  • 승인 2002.05.03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년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전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동안도 더 빨리 가려는 사람을 위해 오른쪽으로 늘어서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을 맞아 외국 손님을 잘 맞아 들이기 위해 친절 청결을 외쳐보지만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나 갈수록 커져가는 강남과 강북의 차이, 카드빚 때문이라며 손쉽게 살해된 다섯사람.
‘집으로’(감독 이정향)라는 영화는 이런 우리의 불행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한 모금 샘물처럼 우리의 목젖을 적신다.
게임기와 페스트 음식에 중독된 7살짜리 상우는 산골에 사는 외할머니 손에 잠시 맡겨진다. 어린 상우에게 벙어리 외할머니는 괴물처럼 느껴지고 바보, 멍충이처럼 보인다. 그래서 할머니가 관심을 보이면 언제든 괴물단지 같은 바보라고 소리치며 도심에서 가져온 콜라와 게임기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 콜라도 떨어지고 마침내 게임기 마저 건전지가 떨어지자 어린 상우는 외할머니의 은비녀를 훔쳐 건전지를 사려고 하지만 길을 잃어 고생만하고 돌아온다.
이렇게 괴로워하는 외손자에게 벙어리 외할머니는 손주가 먹고 싶어하는 ‘켄터키 치킨’을 사주려고 산나물을 팔아 닭을 사고 백숙을 해주지만 상우는 ‘치킨’이 아니라고 한바탕 울어 제친다. 그런 한밤중, 배고품에 지쳐 일어난 상우는 백숙을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다.
이렇게 상우는 할머니가 바보가 아니고 때론 자신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은 마음을 열지 못한다.
장날, 운동화를 사러 갔다가 버스비를 아끼려고 상우는 버스에 태워보내고 혼자 걸어오는 할머니. 이런 할머니를 두시각 쯤일까.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서야 상우는 거북이처럼 느릿 느릿 걸어오는 할머니를 향해 울음을 터트리며 내달린다.
내일이면 엄마가 상우를 데리러 오는날, 상우는 까막눈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친다.
이건 ‘아프다’ 이건 ‘보고 싶다’
상우는 할머니가 아프거나 자기가 보고 싶으면 편지를 보낼 수 있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따라 글을 써보지만 도통 알 수가 없다.
엄마를 따라 버스에 오른 상우. 상우는 창밖 할머니를 향해 말이라고는 오직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기 밖에 못하는 할머니를 향해 자신의 가슴을 동그랗게 쓸어 보인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준 동호의 그림 엽서가 화면 가득 보인다.
‘아프다’ ‘보고 싶다’가 쓰인 옆서가 여러장이다. 우표를 붙여야 할 곳엔 ‘우체국 아저씨 우표값은 상우한테 받으세요’라고 써 있다.
우리가 아둥 바둥 목숨 걸고 사는 것이 상우의 게임기 중독증 같은 것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어린이들도 어른들도 우리가 태어난 우리의 마음고향을 향해야겠다.
<박동욱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