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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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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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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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연교무 "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
돈이 없어 불효의 멍에를 지은 ‘ㄹ’씨
두 달만에 ‘ㄹ’씨가 찾아왔다. ‘ㄹ’씨는 외국인이주노동자로 그동안 남다른 태도로 열심히 한국어교실에 출석하며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한국어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ㄹ’씨가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발길을 뚝 끊고 핸드폰도 받지 않고 숨어버렸다. 이럴 때의 걱정과 실망의 마음은 참 크다. 혹시 사고가 난 것은 아닌가, 병에 걸려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소에는 공장 일로 수업에 못 오게 되면 꼭 전화로 사정을 얘기하며 미안해하던 사람이었는데 친구들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참으로 궁금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ㄹ’씨는 무척 수척해졌고 머리는 삭발하여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전화도 안하고 받지도 않았냐고 야단치려던 마음을 접고 그 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차 한잔을 권했다. 그의 눈이 글썽이더니 “어머니 죽어요. 돈 없어요. 집에 못 가요.” 이는 아직 과거형을 배우지 못한 ‘ㄹ’씨의 한국말 표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항공료와 불법체류자가 물어야할 출국벌금이 없어서 장례식에도 가지 못한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 슬프고 답답해서 친구들과도 소식을 끊고 교무님한테도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며 울먹이는 그를 보며 나도 콧등이 시큰해졌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 것인가? ‘나한테 찾아오지 그랬냐’고 하니까, “교무님 돈 없어요. 나 괜찮아요. 돈 더 벌어요. 집에 가요.”
이제 ‘ㄹ’씨는 한국에 없다. 지난 2월의 소위 프리타임(free time) 기간에 귀국을 하여 이제는 생전에 어머니께 못다한 도리를 남은 가족에게 하고 있다.
공장에서 온갖 노고를 견디던 한국생활을 한국말을 배우고 위로를 받으며 그나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너무나 미안해졌다. 한국 생활이 은혜롭기는 커녕 평생 씻을 수 없는 불효의 멍에를 지게 하였으니…….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보내야했던 ‘ㅌ’씨 부부
‘ㅌ’씨 부부가 백일이 지난 아기의 사진을 보여준다. 건강한 아기를 낳아서 축하한다고 했던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백일인가 했더니, 이 아기는 지금 같이 살고 있지 않는단다. 왜? 아기를 계속 키울 수가 없어서 벌금 내고 본국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내 눈에도 너무나 사랑스런 아기인데 이 아기를 보낸 부모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불법체류자의 아기는 생후 한 달 전에 귀국시키면 벌금이 없으므로 한 달만에 보내는 부모들도 너무나 많단다. 자기네들은 그래도 3개월 이상 같이 있었다며 아기의 사진을 글썽이는 눈물 너머로 본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온 겨레가 눈물을 적시는 우리 한국에서 외국인이주노동자의 가족의 아픔은 외면되고 있다. 우리의 가족이 상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들을 돌아본다면 이들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고 눈물은 멈춰질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운이 좋은 선택된 노동자는 한 방송사의 주선으로 가족을 초청하고 그 광경이 공중파를 타기도 하지만, 정말 이 기회는 너무나 제한된 것이다. 다른 외국인노동자들은 그 화면을 보며 부러운 마음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일터가 이들 없이는 유지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불법체류란 딱지를 붙여 불안과 그리움의 그늘에 살게 하지말고 합법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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