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 다니는 본래목적 - 이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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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 다니는 본래목적 - 이종원 교수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05.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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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 칼럼


잠실교당에서는 수 년에 걸쳐 매주 수요일 저녁 선과 교전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하는 분들 중에는 이미 자기성찰이 완숙한 분도 있고, 교전에 통달 하신분도 있다. 이런 분들이 무엇이 부족하여 공부를 굳이 하러나오는 것일까?
교무님은 ‘우리가 교당에 나오고, 법문을 듣고 열심인 것은 모두 본래의 목적이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서 진리행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교전공부 팀을 극구 칭찬한다. 그때마다 한편으로 우리는 부끄럽지만, 돌이켜보면 몇 년간을 꾸준히 이어온 성실함을 높이 사주셨던 것 같다.
지난 번에는 정산종사 법어 무본편을 공부했다. 교당에 나오고, 교도가 된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집요한 물음과 가르침의 법문들이다. 무아봉공과 불법활용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새로웠다. 한 가지 재미있는 공부를 한 기억이 난다. 경계를 당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아! 공부할 때가 왔다. 공부하자! 혹은 마음을 멈추는 공부를 하자! 또는 자성을 찾는 공부를 하자!등등 익히 들어왔던 말들이다.
그러나 실지로 경계란 그 종류도 수없이 많고 그 해결책도 다르다. 예를 들어 자신보다 약하여 돈과 권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직장의 후배나 아랫 사람 등을 대할 때 은근히 업수이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든지, 좋은 물건들을 보면 마구 사고 싶어진다든지 등등.
이때마다 우리는 청정일념 자성을 찾아가면 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교전에서는 이들의 경우 각각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공부길을 알려주고 있다. 즉 위의 경우 각각 자성의 원래 평등한 자리, 진공한 자리, 지선한 자리, 생멸없는 자리를 반조해야 한다고 했다.
업수이 여기는 마음이 생길 때 평등한 자성을 반조해서도 안 되고, 물욕이 치성할 때 생멸없음을 반조할 수 없다. 반조법도 알고보면 간단한 것이 아니다. 공부의 보람 중 하나다. 교전공부는 그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이는 다시금 우리가 공부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있다는 확인이며, 그 사실이 우리를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게 해주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교도임의 본래 목적은 무엇일까. 그 방법을 교리공부로 다져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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