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 교수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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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교수의 세상읽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09.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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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의 면역작용을 키우자


월요일 아침이었다. 딸이 “아빠, 친구한테 전화왔어요” 라며 좀 짜증난 목소리로 건네주었다. 딸 전화번호로 왜 전화했을까? 이상하다 생각하고 받았더니 뉴욕에 사는 중앙일보사 옛 동료였다.
지난 5월에 대학을 졸업한 딸이 뉴욕 맨하탄에 직장을 얻어 아파트를 구해야 했기에 사방이 옥수수 밭뿐인 아이오아주 깡촌에 사는 우리는 부득이 이 친구에게 부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딸한테 대뜸 “그렇게 일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신문사 기자식으로 윽박질렀나 보다. 친구는 열심히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던 데 대한 질책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딸은 딸대로 신세를 덜 지려고 연락을 안했던 모양인데 월요일 아침부터 이런 식의 꾸지람을 들으니까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해진 나는 안절부절 딸을 위로하고 있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일일이 그렇게 대응하면 어떻게 마음을 편하게 다스리겠느냐, 마음의 면역을 키워야지”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내는 자연과학을 전공했기에 인문과학을 전공하는 나와는 해석을 달리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침 내내 이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 마음공부의 목표이자 방법과 직결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우리 몸은 건강을 유지하는 일종의 자동조절 장치이다. 항원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바이러스 같은 이물질이 외부에서 계속해서 침투하지만 우리 몸은 항체로서 이에 대항하며 스스로의 면역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성이 더 강한 이물질이 들어오더라도 면역으로 단련된 항체가 이를 이겨낼 수 있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 항체가 약하거나, 아니면 아예 생겨나지 않으면 외부의 이물질과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 몸의 항체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마음의 항체를 키우는데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을까? 마음의 항체는 몸의 항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마음공부에서 생겨나는 항원, 항체, 백신은 각각 무엇일까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리작용에서는 항원을 외부에서 우리들 ‘몸’으로 들어오는 이물질로 정의했으니까 심신작용에서 항원이란 우리들 ‘마음’에 들어오는 이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으로 들어오는 이물질이란 우리들 眼耳鼻舌身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 내용물인데 그 내용물이 우리들 마음 속으로 들어가면 ‘탐진치’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아침 딸이 화가 났던 것도 아빠 친구의 꾸지람이라는 항원이 딸의 머릿속에서 ‘화냄(진)’으로 해석되었던 탓이다. 즉 딸에게 꾸지람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항체가 미처 생겨나지 않아서 마음의 면역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딸은 나이가 어려서 그렇다 치더라도 부모나이가 되어서 이런 조그만 싫은 소리에도 마음의 면역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이런 마음은 어렸을 때 천연두 면역주사를 맞고도 면역주사의 조그마한 항원을 이겨내지 못하는 몸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의 면역기능이 없는 사람은 얼굴이 곰보가 된 것만을 부끄러워하고 마음의 곰보가 된 것을 모르고 사는 것과 진배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 몸에서는 항원이 어쩔 수 없이 적게 만들어진다. 그러면 면역기능도 떨어져서 자연 몸이 자주 앓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마음의 면역작용은 몸과는 반대로 작용한다.
결국 항체를 키우는 일은 ‘자기몸 사랑’에서 비롯되는 생리작용이라고 한다. 자기 몸을 끔찍이 사랑하기에 이를 지키려고 몸이 항체를 스스로 부단히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도 우리 몸만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기 마음사랑’이 곧 마음공부의 출발인 셈이다. 성균관대 / 원남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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