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원 서울이전, 반드시 실현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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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원 서울이전, 반드시 실현돼야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3.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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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화정체를 타개할 새로운 물끄를 트는 첫 삽

교정원 서울이전, 반드시 실현되어야




최근 교정원의 서울이전이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반가운 일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였던 원불교 교화가 오늘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영산 대각, 변산 제법, 익산 전법의 대업을 서울의 융법(隆法), 성법(盛法)으로 창달하지 못한 점이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러한 점에서 교정원의 서울시대 개막은 교화정체를 타개할 새로운 물꼬를 트는 첫 삽일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심장부인 수도권에는 경제력과 인재, 문화와 학문이 집중되어 있다. 행복도시가 건설되고 행정부의 대부분이 이전한다고 하지만 서울의 중심적 위치를 크게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나아가 통일 이후를 내다본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2005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남한인구 4,728만의 48%인 2,277만명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원불교의 경우 교도로 집계된 인구 13만 중에서 31%인 4만여 명 만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고 출가교역자의 10%남짓만이 이 지역에 주재하고 있다. 3.7%의 인구비중을 가진 전북에 원불교 교도의 32%가 있으며 출가교역자가 집중 분포되어 있는 점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교정원의 서울이전은 원불교의 산중불교(山中佛敎) 현상을 완화하고 미래지향적 교화전략을 수립하는 상징적 선언이 될 것이다.


교정원의 서울이전은 원불교가 사회로,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교화정체 원인이 인문지리적 해석이라고 한다면 사회학적 해석은 원불교가 한국사회의 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해 온 카톨릭의 교화팽창과 대조된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 천년의 역사와 서구사회의 지원기반을 가진 기성종교와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병든 사회를 위하여 우리의 첨단 약재(藥材)를 널리 펴 쓰지 못한 분명한 현실은 인정하여야 한다. 교정원이 한국사회의 중심에 포진한다는 것은 원불교가 전재동포 구호사업을 전개했던 정신을 새롭게 하여 서울을 중심무대로 전개되는 한국사회의 흐름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사회와 세계를 향한 봉공(奉公)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우리 교단의 발전과정과 규모에 비추어 법치교단(法治敎團)이 정착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종법사의 승계과정, 교단의 원만한 운영은 세계 종교사의 모범이 될만 하지만 규모확대에 대비하여 제도를 견고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도화의 핵심이 종법실과 교정원의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한다. 종법사는 주법(主法)으로서 정신적ㆍ강령적 최고지도자로서 우뚝한 위상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교단행정은 교정원에 과감하게 위임되어야 한다. 과도한 종법사의 권한집중은 지도정신의 피로(疲勞)현상을 가져올 수 있으며 만(萬)의 하나 의사결정의 실수나 오류가 있는 경우 교단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정원의 서울이전은 종법실과 교정원의 역할분담을 정립하는 자연스런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교정원의 단순한 위치변화는 큰 효과가 없을지 모른다. 수도 서울에 원불교를 상징하는 규모와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갖춘 교화센터를 동반하면서 새롭게 강화된 교정원이 이전되어야 한다. 여기서 강화되는 것은 교정원의 권한이 아니라 일선 교화체계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전략기획, 교화연구, 컨설팅 등 서비스의 강화를 의미한다. 교정원 서울시대 개막의 역사(役事)는 경산 장응철 종법사의 당선 일성(一聲)이었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서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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