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의 종교 3-이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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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의 종교 3-이경식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5.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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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실도 아닌 것이 허구도 아닌 것이

지난 3월에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이라 평가받는 르 클레지오가 서울에 와서 강연을 했는데, 그 주제가 ‘기억과 상상’이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을 ‘기억’이란 기능과 ‘상상’이란 기능으로 양분하여 연구하는 것은 본래 철학에서 시작된 것으로 압니다만, 문학을 얘기할 때에도 퍽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팩트 대 픽션???


요즈음 잘 쓰이는 서양말에 팩트(fact)란 것과 픽션(fiction)이란 것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기억 편에 있는 것이 팩트이고 상상 편에 있는 것이 픽션입니다. 팩트란 실제로 있던 일, 사실이라는 말이고, 픽션은 꾸며낸 얘기, 허구라는 말이지요. 대표적 팩트는 역사이고 대표적 픽션은 소설입니다.


얼마 전까지 TV시청자들을 많이 잡아두었던 사극 <주몽> 같은 경우, 우리는 그 장편 드라마의 대목 대목들을 놓고, 저것이 역사 속에 실제로 있던 일일까 의심을 해 봅니다. 주몽이 해모수와 유화의 아들이라든가 금와왕의 양자로 컸다든가 금와왕의 아들 대소 등의 시샘에 고통을 받았다든가 고구려를 세웠다든가 사생아로 태어난 태자 유리를 후계로 삼았다든가 등등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물론 세밀한 내용(디테일)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큰 그림은 팩트입니다. 주몽에 관련된 옛 기록, 드라마 <주몽>의 근거(텍스트)가 된 사료들을 어떻게 다 믿느냐고 한다면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사료에 실린 것들은 팩트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작가는 몇 줄 되지도 않는 역사 기록만 가지고 그렇게 긴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 즉 팩트 맞은편에 있는 픽션의 도움을 받아서 가능한 일입니다.


없던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도 않던 사건을 꾸며낸 것입니다. 상상이란 무책임한 것이지만 없던 인물, 있지도 않은 사건이라도 그럴싸하게 꾸며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엉터리라고 욕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팩트에도 한계가 있고 픽션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주몽>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 작품은 사실과 허구, 팩트와 픽션의 합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팩트와 픽션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팩션(faction)이라고 합니다. 자,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젠 다시 신화 쪽으로 눈을 돌려 봅시다.



산신령은 계실까?


주몽 사료에는 신화적 요소가 적지 않습니다.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오룡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하느님이고, 유화는 물의 신 하백의 딸로서 물속에서 살았습니다. 주몽은 알에서 나왔고, 주몽이 대소에게 쫓길 때 강을 만나자 자라와 물고기가 나와 다리를 놓아주어 달아나게 합니다. <광개토왕비>에서는 주몽이 죽지 않고 황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런 것들은 신화만이 가지는 화소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사료에 있다고 하니 팩트일까요. 믿을 수 없다고요, 그러면 픽션일까요? 꾸며낸 이야기라고요, 아, 저기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란 팻말을 들고 있는 분, 어디 당신이 한번 대답해 보세요.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죽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했다는 것은 사실인가요, 허구인가요? 주몽 얘기는 픽션이지만 예수 얘기는 팩트라고! 누구 맘대로.


신화는 팩션이 아니지만, 신화가 팩트와 픽션의 중간지대에 있다는 점에서 보면 팩션과 통하는 구석이 없지도 않습니다. 어떤 신화든 그것은 픽션이면서도 팩트로 인식되는 속성을 가지니까요. “팩트든 픽션이든 신화는 진실이다”한다면 헷갈리시나요? 「꿈은 개인의 신화요, 신화는 집단의 꿈」이라고 정의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화와 꿈을 가리켜 인류의 원형질에 대한 오랜 수수께끼라고도 했습니다. 꿈에는 수수께끼 같은 무의식의 진실이 담겨 있답니다. 무의식은 유식론에서 말하는 제7식 말나식에 속할 듯합니다. 전5식이 팩트를 담당하고, 제6식(의식)은 픽션을 담당하고, 제7식은 꿈이나 신화 담당인듯 합니다. 꿈이 개인무의식이라면 신화는 집단무의식이란 차이는 있지만.


대종사님의 십상 가운데 ‘삼령기원상’을 대하면서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20세기 대명천지에 4년씩이나 산신을 만나고자 기도하다니. 요컨대, 이것은 팩트가 아니라 픽션이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조작된 신화가 아니냐 그 말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영광에 전하는 산신령 이야기를 대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실제로 5년 동안 산신기도를 하는 모자 이야기가 나오고 목소리로나마 산신을 만나 소원성취를 하는 겁니다.?


산신령은 신화적 장치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일종의 속(俗)신화이지만, 대종사의 삼밭재 기원은 이런 신화가 온존된 영광의 인문지리적 배경을 알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서울문인회장 / 일산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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