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서지부의 교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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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서지부의 교무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1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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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서문성 교무의 서울교화 창립 유공인들 13

원기 11년 여름 경성회원 13명이 발기인이 되어 경성출장소의 장소와 유지 계획이 완성되자 익산총부로 교무 파견을 요청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20세의 청년 송도성 교무를 경성출장소 초대교무로 파견하였다.


원기 12년 봄 총부인사에 의해 경성출장소 교무 송도성이 재임 10개월만에 다시 총부 서무부 서기로 전임되고, 연구부장 송규 교무가 경성출장소 제2대 교무로 임명되어 부임하였다.


원기 13년, 불법연구회 창립 제1대 제1회 총회에서 경성출장소 송규 교무가 영산 지부장으로 전임되고 총부 교무 이춘풍이 경성출장소 제3대 교무로 임명되었다. 이춘풍이 근무 중 병고로 이듬해 익산총부로 귀관하자 교무가 임명되기까지 이공주가 경성출장소를 관리하였다.


원기 14년 11월에 김광선이 경성출장소 교무로 임명되고, 김영신이 서기(부교무)로 임명되므로 교역자 2인이 상주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원기 15년 총회에서 이공주가 경성출장소 교무로 임명되어 재가가 교무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조전권이 공양원으로 근무하다 총부 순교로 이임되고, 원기 17년 이공주 교무가 자신의 계동 사가를 방매하여 돈암동에 새 회관 기지를 매입하고 모친 민자연화, 차자 박원기가 열반하자 출가를 단행하여 경성출장소는 교무가 공석인 가운데 더욱 단결하여 회관 건축 준비를 하였다.


원기 18년 봄 인사에 총부학원 교무였던 이완철과 경성출장소 창립이 헌신하였던 이동진화가 출가하여 여자담당교무로 임명되었다. 원기 19년부터는 김삼매화가 감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하여 경성지부는 안정적인 교화를 할 수 있는 교역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완철 교무는 12년간 경성지부에서 근무하고 영산지부장으로 이임되었고, 이동진화 교무가 4년을 근무 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5년동안 요양한 후 원기 27년부터 경성지부 순교무로, 그 후 경성지부 교무·교감 등으로 근무하며, 김삼매화는 감원으로 19년간 근무하여 경성지부 살림을 책임졌다. 경성지부는 원기 20년부터 정식으로 지부장에 박형균이 임명되었고, 원기 22년부터 28년까지 이완철 교무가 지부장을 겸하였다.


원기 20년부터 서대인이 서기로 근무하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서기, 순교, 공급원, 감원보 등의 직책으로 근무하였다.


원기 22년부터는 여자담당교무 이동진화가 병고로 휴무하자 성성원이 재가로서 여자 담당교무에 임명되어 5년간 근무하였다.


원기 30년 박제봉 교무, 정라선 서기가 부임하여 임원들과 광복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전재동포구호사업과 서울지부 이전 등의 많은 일을 하였다.


본장의 경성지부 역대교무에서는 교무를 중심으로 소개하였으며, 역대 교무중 재가교무였던 이공주, 여자담당교무였던 이동진화, 재가로 여자 담당교무였던 성성원은 경성지부 창립주 16인 중에 속하여 경성지부 창립주 장에 소개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약한다.


그리고 원불교 경성지역 초기교단 역사를 필자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이므로 본지에서는 원기 30년, 1945년 광복과 광복이후 전재동포구호사업과 서울출장소 초대 김대거 소장과 경성지부 박제봉 교무대까지만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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