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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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무게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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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영석(원불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원불교 인권위원회에서는 인권교육을 진행할 때 ‘인권의 저울’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인권의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의 한편에는 어린아이 한 명의 인권을, 반대편에는 어른 10명의 인권을 올려놓으면 저울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체중을 다는 저울과는 달리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인권도 세상 모든 사람의 인권만큼이나 소중함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최근 이천 코리아 냉동창고 화재로 일을 하던 노동자 수 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중 15명이 갑자기 죽었고,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동일한 병명으로 사망하거나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병을 몇 명이나 앓고 있는 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산재를 일으킨 회사 측은 행여라도 발병 사실이 공장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은폐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고, 그런 열악한 노동환경을 관리 감독하여야할 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많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산재 은폐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야할 노조는 오히려 사측의 입장만을 이야기하고 있거나 아예 노조가 없는(!) 사업장도 있다.


그야말로 사람은 죽고 있는데 얼마나, 왜 죽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회사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계속 돌아갈 것이며, 노동자들은 쓰고 버린 산업 폐기물처럼 계속해서 죽어나갈 것이다. 단지 몇 일간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대형 사고로 죽는가,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가가 다를 뿐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과연 한국 사회에는 인권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지, 가지려고는 하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이런 일은 노동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90년 성수대교 붕괴, 94년 아현동 도시가스폭발,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9년 19명의 유치원생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씨랜드 화재참사, 5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인천호프집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그리고 작년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사건 등 소위 말하는 대형 참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고야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일어난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말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화재의 위험성이 높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용접작업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화재시 발생하는 유독가스로 인해 건축용으로 쓰일 수 없는 자재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유사한 이유로 대형 참사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생명도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됨은 자명한 사실이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을 외면해서는 안되며, 더더군다나 타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해서 보상금 몇 푼으로 사람의 생명을 쉽게 돈으로 계산해서도 안된다. 화재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한 가족의 말처럼 ‘반성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번 화재사건과 노동현장에서의 인재는 여느 때처럼 빠른 사건 수습과 보상에 문제의 초점이 놓여져서는 안되며, 그동안 한국사회가 생명과 인권을 경시하는 사회는 아니었나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경시하는 풍조가 지금은 다른 사람의 재앙이지만 멀지않아 자신이 감당해야할 아픔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인권 존중은 우리 모두가 가꾸어 나가야 할 가치이고 삶의 형태이자 사회의 모습이 되어야한다.



사건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들이 같이 아파하고 상처를 보듬는 마음을 넘어서, 두 번 다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상처에 아파하지 말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함께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힘으로 모아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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