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의 불, 종교 속의 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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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의 불, 종교 속의 불1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3.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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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경식 교도의 신화 속의 종교13

지난 번에는 세계를 구성하는 4원소 가운데 물을 가지고 그 신화적 의미와 종교적 기능을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불로 대상을 바꾸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불의 신화적 성격을 소개하려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그리스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하늘에서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불을 기술문명의 시발로 볼 때는 인류에게 엄청난 축복이 되겠지만, 하늘을 주재하는 제우스신은 노발대발 하였습니다.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와 훔쳐다 준 불을 받아들인 인간에게 쌍벌죄가 적용됩니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산 위의 있는 바위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끝없이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내리고, 인간에겐 판도라라는 여자를 보내,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고통을 받도록 한 이른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했다는 것이지요.




#만물은 불에서 나와 불로 돌아간다


자, 맛보기는 그 정도로 하고 본격적인 불 이야기로 들어갑시다. 먼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일은, 물과 불이 흔히 상극이라고 하지만 그 상징성과 기능이 겹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저는 한국의 건국신화가 남자 쪽의 태양신과 여자 쪽의 용신을 양대 축으로 하는 구도라고 했고, 그것을 원소로 단순화시키면 불과 물의 결합임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것은 건국이란 창조적인 작업이 남과 여, 물과 불의 합작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물과 불, 두 원소는 상극이면서 상생입니다. 둘이 서로의 부족을 채워 온전한 하나가 되기를 지향하는 상보적 관계로, 이는 음양사상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물은 이해 못할 양면성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이 생명과 죽음이란 모순된 두 가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듯이 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을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금술사들은, 만물이 불에서 나와 불로 돌아간다고 하고, 불이 생성과 소멸의 집행자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불은 에너지의 원천으로 생명의 탄생이나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동시에 만물을 태워 없애는 파괴와 죽음의 물질이기도 합니다.


불이 가진 소멸의 관념은 부정한 것을 제거하는 정화의 기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 그리스의 미스테리아 세례의식에서도 정화는 물만이 아니라 불로도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에서 세례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가 회개하도록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요컨대 물보다 불로 세례를 주는 것이 한 수 위라는 말이지요. 다만 물이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하는 정화의 성격이 강하다면, 불은 삿됨을 제거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성격이 더욱 강하다고 할 만합니다.




#불의 정화 불의 세례


어르신들은 정월에 하는 쥐불놀이란 민속을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쥐와 해충을 태워버린다는 현실적 의미와 함께 한 해의 액을 막고 재앙을 미리 제거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민속적 폭죽놀이나 불꽃놀이는 하나같이 삿된 귀신과 재앙을 물리침으로써 복을 부른다는 뜻을 지닙니다.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명저 <황금의 가지>에서 사례를 보면, 유럽에서의 불놀이는, 전염병이나 흉작과 같은 재앙은 물론 마법이나 마귀를 물리치는 효험을 기대하고 행해진 것입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전 유럽에서 행해진 마녀사냥 이야기를 들어보셨겠지요.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나 흉작으로 인한 기근은 물론 전쟁의 원인까지도 마귀 탓으로 돌리고, 기독교의 종교재판이 주도하여 퍼뜨린 악명 높은 마녀재판! 거기서 잔인한 고문을 거쳐 이른바 마녀로 지목된 가엾은 여자들이 무려 4만 명이나 처형되었다는데 그 대부분은 화형이었습니다. 사탄은 그 흔적조차 없애야 한다는 무지몽매한 논리인데, 어쨌건 이것도 부정한 것을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불의 정화기능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교학적으로는 불을 경배의 대상으로 하고 신성시하는 신앙 시스템을 통틀어 배화교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원전 6세기경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입니다만, 신자들은 신전에 불을 모시고 그로써 정화의식도 실행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주적 새판 짜기인 개벽 역시 홍수가 아니라 대화재를 통한 소멸 후에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이뤄진다고 믿습니다. 즉, 소멸과 생성, 죽음과 재생이 불을 통하여 이뤄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그렇습니다. 인간 세계가 너무나 타락하여 못 쓰게 되자 제우스는 세상을 멸하고 새판을 짜기로 합니다. 그런데 처음엔 불로 다 태워버릴 생각이었는데 불이 하늘까지 태울까 걱정이 되자 한 등급 낮추어 불 대신 홍수로 세상을 멸하고 새판을 짰다는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불이나 물이나 세상을 정화하는 기능은 같다는 전제지만 강력하기로야 물보다 불이 윗길이라는 것이기도 하지요.


<서울문인회장, 일산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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