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문화와 소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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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문화와 소통사회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5.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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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최재천(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미래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성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잘 이해하면 미래의 모습을 조금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을 바탕으로 우리의 미래를 6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후변화 : 21세기 전반부 내내 우리는 기후변화 문제에서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과학계에서는 ‘지구온난화는 과학자들의 음모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지금 미국 소고기가 절대 광우병에 위험하지 않으니까 검역도 하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말고 먹어라’ 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입니다.


‘지구는 절대로 더워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료들을 보고 잘 분석해 봐야 합니다. 지구의 온난화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행동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식들에게 조금 나은 세상을 남겨주려면 우리가 지금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원고갈 : 점진적으로 자원고갈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21세기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디아, 중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 국가들은 미국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미국은 환경 입장에서 보면 참 나쁜 나라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미국사람처럼 산다면 지구가 3-4개 필요합니다. 문제가 심각하지요.


저는 5-6년 전부터 자원고갈문제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에 물이 부족사태가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물에 관한 굉장히 복 받은 나라입니다. 강 하나에 10개의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나일강을 생각해 보세요. 나일강 상류의 수단이나 이디오피아가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면 이집트는 물 때문에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행복 합니다. 미국보다 10배 잘사는 나라가 된다고 해도 절대로 대운하 하면 안 됩니다.




고령화 : 우리나라가 제일먼저 당하는 문제가 고령화입니다. 2020년이 되면 65세 이상 노인들이 15세 미만 어린이들보다 많아집니다. 노인의 숫자가 많아지면 과연 우리 정부가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통계청에 의하면 2020년에 대한민국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5천만도 못되고 4천9백만에서 꺾인 답니다. Dynamic Korea에서 Dying Korea입니다.




여성 : 지금은 여성시대입니다. 여성 인력을 활용하지 않고 21세기를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교육을 잘 받고 탁월한 여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권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저조한 나라입니다. 여성시대를 좀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혼화 :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서 지금같이 대규모로 피가 섞인 시대가 있었나요? 시골의 40%가 국제 결혼 가정입니다. 제가 8-9년 전에 ‘우리민족이 단일민족이 아니다’ 생물학자로서 글을 썼다가 어르신들에게 흠뻑 야단맞았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열대예찬’을 통해 ‘섞여야 아름답다. 섞여야 순수하다. 섞여야 건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연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늘 섞여 왔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유전자의 다양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전국이 조류독감으로 난리입니다. 철새가 조류독감에 걸리면 유전자가 섞여서 내성이 약한 철새는 죽고 강한 철새는 살아남습니다. 섞여야 건강합니다. 단일민족의 허상을 버리고 다민족 국가라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겠습니다.




창의와 혁신 : 저는 언제부턴가 문화(Culture)와 문명(Civilization)관계를 생각하다가 인류전체가 거대문명 또는 메타문명으로 묶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상에의 인간들은 과학 기술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아무리 본인이 거부해도 본인을 먹여 살리는 인간계가 이미 과학기술로 묶여 있다고 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문화가 문명보다 더 작은 개념으로 변화해 그 기계 문명 속에서 이제 누가 더 기가 막히고 강한 문화 바이러스를 창조하여 퍼뜨리느냐에 대한 게임의 법칙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는 한류문화를 동아시아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새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문화를 만들어 전 세계에 퍼뜨릴 것인가. 이런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창의와 혁신에 대해 강조합니다.


지난해 타임지를 읽다가 기막힌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The Age of Creativiy & Innovation 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전에는 혁신의 주체가 극소수 지도자였고 천재들이였지만 이제는 다수로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기막힌 아이디어만 꺼내놓으면 순식간에 구체화된다는 것이랍니다. 몇 명의 지도자, 수재가 세상을 이끌어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통섭사회 : William Whewell’s 가 쓴 통섭(Consilience)은 널리 소통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을 겁 없이 한자[統攝]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물론 통섭이라는 이 단어가 원효대사 처음 쓴 글자라는 것을 알아서 매우 황홀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통섭의 뜻을 지성의 ‘통합이다’ 라고 풀고, 중국과 대만에서는 ‘융통 ,일치성, 계합’이라고 씁니다.


William Whewell’s는 Consilience를 강에 비유했습니다. ‘작은 지식들이 모여서 언젠가 어디서 모여서 큰 것을 이룬다.’ 동양에서 늘 하던 일입니다. 지식들이 모이면 언젠 가는 쌓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Edward Wilson’s 는 환원주의적인 자연과학적인 통섭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환원주의가 20세기 후반부까지 지배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21세기 똑같은 방법으로 써야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진리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종교와 과학, 시와 물리학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들이 만나야 서로 다른 것을 찾으리라 굳게 믿고 계속 주장하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 이 시점 이 땅에서 과연 통섭이 가능한가? 질문한다면 섭섭하게도 불가능합니다. 다만 우리 다음 세대는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 교육부터 확실하게 하지 않으며 통섭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미래를 준비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리 김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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