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피리소리
상태바
내 마음의 피리소리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5.29 0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김정탁 교수의 세상읽기

제가 다니는 원남교당은 그 건물과 관련해서 자랑할 게 몇 개 있습니다. 정원이 있어서 철마다 피는 꽃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고, 옥상에 올라가면 전망이 좋아 창경궁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즐거움은 법당의 시원스러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창문 사이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들 마음마저 시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바람을 느끼면서 교감님 설법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물론 바람이 세차게 불면 창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럴 때 창문 때리는 바람소리는 “광~ 쾅” 하며 여간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창문을 때리는 바람소리가 철마다 다른 듯합니다. 여름이 되면 “휙~ 휙~” 하고 소리를 내지만 겨울이 되면 “쌩~쌩~” 하고 소리를 냅니다. 이 바람이 길 건너 창경궁으로 옮아가 숲 속을 지나면 또 다른 소리를 냅니다. 같은 바람인데 부딪치는 곳마다 이렇게 다른 소리를 냅니다. 장자는 이런 바람소리를 가리켜 ‘대지의 피리소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대지의 피리소리처럼 우리들 마음에서도 여러 가지 피리소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들이 밝은 피리 소리를 내지만 어떤 때는 어두운 피리 소리를 냅니다. 또 어떤 때는 즐거운 피리 소리를 내지만, 또 어떤 때는 괴로운 피리 소리를 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희노애락(喜怒哀樂)에 따라 만들어지는 소리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들 마음은 하나인데 이 하나의 마음에서 이렇게 다른 피리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눈·코·귀·혀·몸의 감각기관 탓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눈으로 좋은 경치를 보면 마음이 금방 환해지다가 귀로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이내 마음은 어두워집니다. 이런 변덕스러운 우리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나이가 들어 철이 들어서인지 왠만한 것을 보아도 과거보다 무디게 반응합니다. 거리를 다니다가 좋은 차를 보아도 옛날처럼 저 차를 꼭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또 좋은 집을 보아도 과거처럼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집보다 더 소중한 게 그 안 소프트웨어인 가족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처신하고 행동하면 더 이상 공부할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마음공부를 하면 할수록 해야 할 마음공부는 왜 이렇게 자꾸만 생겨나는지… 그래서 지금은 마음공부의 길은 왜 이렇게 멀고 힘든 길인지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마음공부는 ‘듣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저를 칭찬하면 아직도 어린애처럼 좋아합니다. 며칠 전 스승의 날에 제게 듣기 좋은 소리로 가득 찬 편지들을 학생들이 보냈는데 그런 편지를 받으면 그러려니 하고 무덤덤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듣기 좋은 소리는 나은 편입니다. 저를 헐뜯거나 하는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제 마음공부 상태는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 상태입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이순(耳順)’을 인생의 목표로 설정한 듯합니다.


그런데 왜 ‘귀’의 마음공부가 ‘눈’, ‘코’, ‘입’, ‘몸’의 마음공부에 비해 힘들까요? 저는 그것이 수(受)·상(想)·행(行)·식(識)의 정신작용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이어 ‘수상행식 역부여시(受想行識 亦不如是)’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수즉시공 공즉시수(受卽是空 空卽是受)…, 식즉시공 공즉시식(識卽是空 空卽是識)을 줄인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수·상·행·식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만약 우리가 싫은 소리를 들으면(색) 거기서 그치지 않고 괴로움으로(수), 분노로(상), 미움으로(행), 그리고 위(僞)·악(惡)·추(醜) 등의 관념까지 만들어서(식) 우리들 마음에서부터 온갖 바람소리를 일으키게 되지요. 게다가 수·상·행·식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바람소리는 더욱 커져서 우리들 마음의 경계심은 더욱 굳어져 미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주 힘들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제 마음공부는 피리소리 내지 않는 그런 마음을 목표로 하고자 합니다. 기쁜 일을 당해도 기쁨의 피리소리를 내지 않고, 슬픈 일을 당해도 슬픔의 피리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좋은 소리를 들어도, 싫은 소리를 들어도 그러려니 하고서 같은 음의 피리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마음의 피리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혹시 경계를 당해 마음의 피리소리가 커지려 하면 살랑살랑 불어서 우리들 마음을 항상 맑고 밝게 만들어주는 원남교당 2층 법당의 그 바람소리를 머리 속에 그려볼 것입니다.


원남교당 / 성균관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