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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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들의 글쓰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6.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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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서연 교무의 우리는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많이 이뤄지는 글쓰기 활동의 하나가 백일장이다. 외국인들에 대한 백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그 대상이 주로 유학생이나 국내 주재원의 가족 등 비교적 경제 문화적으로 여유가 있는 층이었다. 이런 백일장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이 함께 하기가 어려웠다. 이들과 처해있는 환경이 달라 공감대가 작고 이들의 공용어인 영어를 모르기도 하는 등 보이지 않는 벽이 있기 때문이었다.


서로 말이 통하는 같은 국가 출신 이주여성 중에도 자국에서의 수준 차이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서로 통하지 못하는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으로 글쓰기를 주목하게 되었고, 무작정 글을 쓰라고 하면 하지 못하므로 백일장을 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하고 자신의 본래 모습과 현재 모습, 미래 모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동기를 부여하며, 글 쓰는 과정을 통해 순수한 자신을 회복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좋은 인과를 만들어 간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정기일기를 쓰는 것도 바로 이런 바탕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이런 염원에 대한 답인지 다행이도 3년 전부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비문해 정보화 백일장에 이주여성들도 참가할 자격이 주어졌다. 우리 센터는 그 때부터 이주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올해로 3년 째 계속 참가하고 있다. 첫해와 올해는 서울의 백범기념관에서 열렸고, 지난해에는 대전의 엑스포센터에서 열렸다. 우리 센터에서는 늘 초급수준의 학습자들이 참가하여 한 번도 입상한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실망한 적은 없다. 글쓰기가 아주 어려운 처지의 학습자에게는 아무 내용이나 미리 써서 무조건 암기하고 백일장 현장에서 제목이 뭐가 주어지던 자기가 암기한 것을 쓰게 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참가하는데 뜻을 둔 것이었다. 이런 엉터리 참가자이지만 현장에서 다른 참가자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생활 전반에 대한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고맙기만 했다.


많은 이주여성들은 자국어로도 글쓰기가 매우 힘든 사람들이다. 이는 이주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들도 글쓰기를 즐기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바라봐야 한다. 평소에 글쓰기를 안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권하면 뭘 써야 하는지 모른다는 대답부터 나온다. 그냥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하면 더 못한다. 그래서 제목을 주고 쓰라고 하면 한두 줄 쓰고 멈춘다. 가장 편한 글쓰기가 일기 또는 편지라고 하기에 편지를 쓰라고 했더니, 누구에게 무슨 내용을 써야하는지도 감을 잡지 못하여 어머니에게 쓰라고 하면 그때서야 한 줄 쓰는 것이 ‘어머니, 안녕하세요?’하고는 끝이다. 이것은 평소 그만큼 생각을 안 하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런 모습을 스스로 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보람이다.


이런 분들이 이제는 공책 한 바닥에 찰 정도로 글을 쓰게 되었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쳤던 일들을 문자로 옮기며 신기해 한다. 스스로 처음에는 한 줄 밖에 못 썼는데 이제는 쓸 수 있다며 대견해 했다. 그래서 올해엔 처음으로 막무가내로 외워서 참가하는 사람 없이 5명이나 참가하였다. 이번에도 입상자는 없다. 하지만, 이분들이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이만하면 나도 많이 좋아졌다. 상을 탈 수도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가 현장에서 다른 이주여성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실력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 큰 소득이었다. 교사가 아무리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한번 자아도취에 빠지면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지만 직접 체험한 것은 바위에 새긴 명문이 되는 것이었다.


이주여성들의 글쓰기는 이렇게 이소성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주는 효과가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앞으로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나중에 이분들의 정기일기가 세상을 일깨우는 또 다른 자극이 될 것이라 믿는다.


외국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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