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과 괜찮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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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과 괜찮은 것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6.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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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시경(서울봉공회 시민환경분과위원)

<모르는 것과 괜찮은 것>




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3월 봄바람과 함께 북상했던 조류독감을 시작으로 국제 곡물가 급등으로 인한 식품 가격 상승, 이어 촛불 민심을 동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과 직결된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끊일 새 없습니다. 장을 보면서 계란코너에서 서성이고, 두부를 집었다 놓았다 망설인 탓에 평소보다 시간이 배로 들었습니다. 이제 유전자조작 옥수수 포함 여부까지 따지느라 장을 보는 제 걸음이 갈수록 더뎌집니다.




유전자조작생물체, 유전자조작농산물, 유전자변형식품, GMO....


일반인들과 무관할 것 같은 이 단어를 이제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수확이 적게 나오는 벼를 병충해에 강한 다수확 품종으로 개량하는 정도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저의 순진한 생각과는 달리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종래의 품종개량이 같은 종, 즉 벼면 벼, 콩이면 콩끼리 우수품종을 교배시켜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시켜 가는 것이라면 이 유전자조작생물체는 전혀 다른 종, 예를 들면 딸기에 빨리 무르지 말라고 추운 바다 속 넙치의 유전자를 주입하고, 모든 식물을 죽이는 제초제를 뿌려도 작물은 죽지 않고 잡초만 죽게끔 만든 콩, 해충을 줄이는 독소를 작물 스스로 만들어내는 옥수수 등 이전에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전혀 새로운 생물체를 창조하는 것이랍니다. 이렇듯 자연상태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종간 경계를 허물고 태어난 저 딸기는 딸기일까요? 넙치일까요? 이도저도 아닌 딸치일까요?




유전자조작농산물(이하 GMO)은 생산성을 월등히 향상시킬 수 있어 세계적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며 농약 등을 적게 사용할 수 있어 환경보존에도 기여한다고 주장하는 찬성론이 있는가 하면, 이 식품을 장기간, 복합적으로 섭취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인체위해성과 자연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아직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규제해야한다는 반대론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약 25%. 그중 쌀을 뺀 나머지의 식량자급률이 5% 정도인 상황에서 콩과 옥수수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2006년 기준으로 콩은 전체 수입량의 약 80%(약 100만톤) 옥수수는 약 75%(약 760만톤)가 유전자조작농산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GMO 콩이나 옥수수를 주로 동물 사료나 비식용으로 이용하고 있는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두부, 된장, 간장, 식용유와 각종 가공 제품 원료로 두루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비유전자조작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하던 우리나라 4대 전분당업체가 5월부터 수입하기 시작한 식용 GMO옥수수는 일명 BT옥수수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옥수수나방을 죽이는 BT라는 독소(살충제)를 옥수수 유전자에 넣어 옥수수가 스스로 농약성분을 합성하므로 따로 농약을 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이 옥수수는 모든 세포마다 나방류에게 유독한 단백질을 가지게 되는데 우리가 BT옥수수를 먹을 때 그 속의 살충제 성분 단백질을 떼어내고 비유전자조작 옥수수와 동일한 성분만 섭취한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이런 물질이 지속적으로 몸에 들어오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이상 반응을 하게 되고 각종 알러지나 아토피의 원인이 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전분당은 각종 제과, 제빵, 음료수, 아이스크림, 껌, 간장, 된장 등 단맛이 나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 원료로 사용될 뿐 아니라 의류, 접착제, 인쇄물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품입니다. 상위 네 개 업체가 국내 전분당의 90% 정도를 공급하며 올해 필요한 200만톤의 옥수수 중 이미 국내에 들어온 15만톤을 포함하여 120만톤을 GMO옥수수로 수입할 예정이며 내년에는 180만톤까지 수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GMO의 안전성이 완벽하게 확보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모든 가공식품에 GMO 사용여부를 표시하도록 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많은 예외규정을 두다보니 GMO 성분표시를 하지 않은 제품에서 GMO 성분이 검출되어도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표시면제 내용을 보면 첫째, GMO원료를 사용하더라도 가공 후 관련 DNA나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으면 면제, 둘째, GMO 원료를 두 번 가공하면 표시면제, 셋째, 주요재료 다섯 가지가 아니면 면제, 넷째, 생산과 유통과정에서의 비의도적 혼입률을 3%까지 인정, 다섯째, 가축용 사료는 표시면제입니다. 이래저래 소비자가 제품의 내용을 알고 스스로 챙길 수 있도록 똑똑해지지 않으면 못산다고 등 떠밀리는 세상입니다.




디디티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던 시절에 머릿니를 없애기 위해 그 가루를 머리에 허였게 뿌리고 다녔던 것이 불과 4,50년 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반 농약으로의 사용조차 금지되고 있습니다. 유해성분이 원래 없어서가 아니라 그 물질의 내용을 정확하게 몰랐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결국 우리가 지금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다거나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 현실에서의 결론입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상 눈앞에 뻔히 보이는 상업적 이익을 뒤로 하고 국민이 원하는 윤리적 제품만을 생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적어도 먹거리에서만큼은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규제가 필요하겠지요.


제품의 내용을 알고도 구매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 앞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발생 가능한 위험성을 있는 그대로 알려줄 의무가 정부에 있으며 그 정책행위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지금 우리 정부에겐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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