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란 이름으로 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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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란 이름으로 살면서도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7.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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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윤덕 교무의 마음으로 만나는 유럽이야기

독일에서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에 이어 네 번째 큰 도시인 쾰른. 필자가 5년 동안 독일에 살며 세 번째 방문을 하고서야 이 도시가 로마의 지배시절 식민지라는 콜로니아 colonia에서 유래되었음을 알았다. 참으로 깊이 있게 안다는 것의 한계가 없음을, 그래서 단박에 알아차리는 것과 점차로 순숙되어 가는 것의 차이를 다시 알게 된 쾰른을, 식민지란 이름으로 살면서도 그것을 능히 이겨낸 그들의 발자취로 전해 본다.


중세유럽의 정치는 봉건제도요, 경제는 장원이요, 종교는 가톨릭, 문화는 ‘신’중심, 학문에서는 신학의 우월적 지위 때문에 과학의 발달이 저해되던 시기이며, 문학에서는 십자군전쟁 등의 미화문학인 기사도문학이 주류를 이뤘고, 학문적으로는 중세 대학이 설립되었고, 철학으로는 종교철학(스콜라철학)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다고 필자는 배웠다.


거기에 건축양식은 고딕양식으로 높고 뾰쪽한 탑과 직각형태의 벽과 스테인드글라스(색유리)로, 아치형 천장으로 대변되는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 쾰른의 대성당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로마제국 이래 2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쾰른은 라인강 유람선이 출발하는 곳으로 각종 산업 박람회 등 산업과 문화가 골고루 발달된 도시이다.


이 도시의 상징은 1996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성 베드로와 마리아 대성당으로 이 성당을 쾰른대성당이라 부른다.


약 280년의 공사 중단 기간을 포함해 약 600년에 걸쳐 지어진 1248년에서 1880년까지 이 성당은 독일 쾰른의 로마 카톨릭 교회이다.


1248년 8월 15일 성당건축이 시작되어 1880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되었으나 지금도 보수중인 성당으로 유명하다.


쾰른대성당은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최대의 고딕양식 교회인 스페인 세비야대성당과 이탈리아 밀라노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규모가 큰 고딕양식의 교회이다.


원래 이 성당 자리엔 870년 쾰른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카롱링어 성당이 있었다. 1164년 프리드리히 바바로사 황제가 쾰른의 대주교 라이날드 폰 다셀(Rainald von Dassel)에게 밀라노 정복에 도움을 준 감사의 표시로 준 동방박사 세명의 유골을 하사했다.


성경에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했던 동방박사 세분의 유해를 간직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카롤링어 성당은 13세기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한 고딕양식열풍이 이 대성당을 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실제 쾰른 성당은 당시 지어진 렝스와 아미엥 성당을 모델로 지었으며, 설계 역시 북프랑스에서 초빙된 게르하르트(Meister Gerhard)가 맡았고, 자신이 쾰른 대성당 공사의 첫 총책임인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곳에 안치된 동방박사 성유물함(聖遺物函)은 서양 최대 규모이자 중세 황금 세공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궁극적으로 이 유물함에 걸 맞는 건물을 만들기 위한 공사가 쾰른 대성당 건축의 시초가 된 것이다.


오토시대에 현재의 터키 이스탄불에서 수입된 게로십자가(Gerokreuz, Gerokruzifix) 역시 중요한 유물인데, 이탈리아 북쪽 서유럽 최초의 대형 십자가이다. 게로라는 이름의 사제가 이 십자가를 가지고 성만찬을 집례 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는 데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 이 십자가는 중세 유럽 대형 십자가 세공의 시초가 되었다.


쾰른 대성당은 로마시대의 도시 경계선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의 쾰른 중앙역과 구 시가지, 라인강 위로 놓인 호헨촐렌다리와 루드비히 박물관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2004년 7월에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중 처음으로 위험목록에 올라가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라인강 건너편에 세우기로 계획 된 고층건물이 쾰른 대성당의 경관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이에 쾰른시는 즉각적인 대처를 통해 고층건물의 건축과 건물의 최대 높이를 제한했고, 2년 후인 2006년 7월 위험목록에서 해제 되었다.


중세 말까지 건설된 시가는 라인강 좌안에 반원형을 이루고 주위에 방벽을 둘러쳤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옛 건물이 거의 파괴되고, 성곽자리는 현재 넓은 녹지대가 되었다. 그 바깥쪽에 19세기 이후의 신시가가 건설되어 주택지대와 공장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기계·전기·섬유·화학 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구시가에는 독일 고딕 건축의 걸작품인 쾰른대성당을 비롯하여 로마 시대의 유적 및 모자이크 등을 수집하는 로마게르만박물관, 16∼17세기의 독일과 네덜란드의 회화를 소장한 발라프리하르츠미술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聖)게레온교회 등 몇몇 유명한 옛 건축물이 남아 있다.


쾰르너 돔은 프랑스의 파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벨기에의 브뤼셀, 또 룩셈부르크 등 유럽 주요 도시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인 쾰른 중앙역과 바로 인접해 있기도 해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도시의 위성도시 베르기쉬 글라드바흐(2006년 독일 월드컵 때 한국팀 숙소가 있던 도시)에 원불교가 자리를 잡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민지란 이름으로 살아온 2천년. 그들에게 식민지란 그저 이름일 뿐이요, 알찬 내용은 스스로가 채워왔다. 모든 이름은 그것이 진리를 명명한 것일지라도 인연따라 붙여질 뿐이다. 초창의 고난의 감내는 누가 어떻게 내용을 채우는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레겐스부르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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