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비, 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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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비, 빗물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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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시경 (서울봉공회 시민환경분과위원)

비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버스를 탔습니다. 창밖으로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와 외출한 젊은 부인이 지나갑니다. 보이는 물웅덩이마다 철벅거리며 밟고 지나가는 아이를 향해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는 자기 재미에 빠져 듣는 둥 마는 둥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내가 흙길을 밟아본 것이 언제였나. 잠시 전까지 내렸던 그 빗물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스로 기억해낸 흙길은 녹색이 산을 덮기 시작하던 4월, 남편 성화에 못이겨 높지도 않은 집 근처 산을 헐떡거리며 올라갔다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 대한민국의 수도, 거대도시 서울


천만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과밀도시 서울의 도로포장율은 99.9%. 북한산 관악산 등의 산악지역과 한강 중랑천과 같은 대형하천 주변을 제외하고 몽땅 덮여있다고 보면 됩니다. 밑동 부분만 간신히 흙에 드러낸 채 보도블럭에 둘러싸여 서있는 가로수 옆 하수구로 좀 전까지 내렸던 빗물이 빨려 들어갑니다.


바다나 육지에서 증발한 물은 구름이 되어 눈, 비로 땅에 내리고 이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강을 이뤄 바다로 다시 흘러갑니다. 이런 물의 순환 속에서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온통 시멘트로 덮인 도시에서 예전과 같은 생명의 순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2002년과 1962년의 서울시 물순환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를 보니 강수량이 연간 1266㎜로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대기중으로 증발산 되는 양은 264㎜ 감소되고 표층토양층에서 중간유출되거나 지하수로 유출되는 양은 164㎜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지표면에서 바로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양은 483㎜가 증가했는데 이는 높고 반듯한 건물들로 근대화된 서울을 만든 결과입니다. 길이 포장되어 사람들이 편해진 만큼 더 이상 물을 머금지 못하는 아스팔트 도시의 기온은 갈수록 높아지고 국지적 홍수피해와 마른 하천의 증가에 따른 수질오염, 건조한 대기로 인한 호흡기 질환은 늘어만 갑니다.


우리나라의 평균 강수량은 1250㎜ 정도로 적지 않은 양이지만 6월에서 9월에 이르는 4개월 동안 70%의 비가 장마나 태풍과 함께 집중호우의 성격을 띠며 내립니다. 서울에서는 땅속으로조차 갈 곳이 없는 빗물을 도심에서 빨리 치워버리기 위해 하수도를 정비하고 구불구불하던 하천을 곧게 만들었습니다. 한동안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서울 근교에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거대한 저수지 노릇을 하던 논이 없어지자 국지적 침수피해는 더욱 빈번해지고 피해규모도 훨씬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 생각을 바꿔 날로 심해지는 여름철 호우피해를 줄이기 위해, 생명이 살아 숨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빗물을 어떻게 하면 잘 모으고 이용할까를 고심해야할 때입니다. 서울시에서는 빗물을 모으기 위한 대책으로 투수성 포장을 늘리고 대형 건설사업시 우수침투시설을 설치토록 하여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 수 있도록 하고 빌딩, 아파트, 학교 등의 지하에 빗물저류조를 설치하여 정원수나 잡용수, 방재용수로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로 진행되는 거창한 일 말고 우리들이 소박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옥상에 정원을 만들거나 집밖에 화분 내놓기, 담장 허물어 생울타리를 만들고 나무심기, 친구들과 동네 자투리 공간에 화단만들기 등 소규모 녹지복원을 권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극장에 갔다 무심코 창밖을 보고는 많이 놀라면서도 행복했던 적이 있습니다. 3,4층짜리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그곳에 녹색 울긋불긋한 옥상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배추 절이는 것에 썼음직한 대형 고무통부터 쓰다버린 욕조, 크고 작은 스티로폼상자 등 용기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식물들은 하나같이 즐거워보였고 걔들을 애정으로 키우고 있을 누군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시내에는 개별건물이나 주택을 가진 교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신축한 곳들은 옥상에 정원을 꾸미기도 합니다. 교당마다 타고난 사랑으로 식물들을 잘 돌보는 교도님들이 한두분은 꼭 계십니다. 지나치게 화려할 필요 없이 소박한 교당 정원들이 생겨서 지나가는 누구나 마음 편히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실현가능한 일일 것 같은데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여의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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