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난다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두 가지 영역으로 표현되는데 하나는 현상(appearance)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reality)의 세계이다. 현상은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경험하는 세계라면 실재는 감각기관으로 경험할 수 없고 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만 경험할 수 있다. 현상의 세계가 좋고 낮음 혹은 크고 작음 혹은 옳고 그름 등등의 이원론으로 경험된다면, 실재의 세계는 이 모든 이원성을 넘어서는 세계(non duality)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에서는 실재의 세계를 ‘neti neti’라고 표현하는데 즉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 실재(reality)를 브라만(Braman)이라고 부르는데 브라만은 또한 절대자 혹은 궁극적 존재 혹은 궁극적 진리(the Absolute)는 신(God) 혹은 존재(Existence, Being)라고도 한다. 오쇼의 말에 따르면, 부처님이 궁극적 존재를 무 혹은 공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과학적 표현이므로 불교는 매우 과학적 종교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신(God)이라는 말은 궁극적 존재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의미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브라만이라고 하는 반면 인간의 본질은 아트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트만과 브라만은 본질에 있어서 동일한 것으로 이 동일한 본질을 진아라고 한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이것을 ‘Tat tvam asi’(That art thou)라 표현하는데, 즉 그것이 바로 너라는 의미이다. 즉 진리는 바로 네 속에 있다는 의미로 ‘밖에서 구하지 마라’의 우파니샤드적 표현이다. 브라만과 아트만의 동질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궁극적 본질 즉 진아를 회복하려는 수행문화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인도의 수행문화는 바로 실재를 경험하기 위한 노력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 실재와의 합일이 수행자들의 이상이다. 이 실재와의 합일을 위한 수행문화 혹은 방법을 요가라고 부르는데 요가라는 말은 원래 소에 고삐를 꿰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대표적인 요가는 카르마 요가, 박티 요가, 즈나나 요가, 라자 요가인데, 라자 요가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를 핵심으로 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과학이고 앞의 세 가지 요가는 인도의 성서인 바가바드기타에 나온다. 카르마 요가는 행동 혹은 행의 요가로 아무런 대가나 결과에도 구애되지 않고 오로지 해야 할 일만 하는 것이다. 박티요가는 헌신의 요가 혹은 성스러운 사랑의 요가로 만트라를 염하거나 찬송을 하거나 하면서 성스러운 사랑을 느끼고 그 감정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은 즈나나 요가로 지혜의 요가를 의미한다. 시바난다의 표현에 의하면 ‘모든 존재들 속에서 참 나를 아는 것이 즈나나 즉 지혜’라고 말한다.
브라만 즉 신 혹은 궁극자의 본질을 깨달아 아는 것으로 브라만의 본질을 깨쳐 알아서 모든 감정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이 우파니샤드나 베단타 수행자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다. 브라만의 본성은 우파니샤드에서 사트시트아난다로 표현되는데 사트(sat)는 진리를 의미하고, 시트(cit)는 순수의식을, 그리고 아난다(ananda)는 지복(bliss)을 의미한다. 즉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을 깨쳐 알면 그 자리가 진리이고 순수의식이며 지복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전통인도 영성철학인 베단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재정립한 라마크리슈나와 비베카난다 역시 인도사상의 종합적 입장을 취한다. 라마크리슈나는 절대적 존재인 신(God)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의 사상을 간략히 말하자면 존재의 일체성(the oneness of existence), 모든 존재들은 신성함(the divinity of all living beings), 신은 하나라는 것(the unity of God)과 종교들간의 조화 혹은 화합(the harmony of Religions)을 강조한다. 또한 신을 실현(God Realization)하는 것(무신론적 표현을 하자면 자기실현 즉 Self Realization)이 모든 존재의 최고의 목적(the supreme goal of all living beings)이라고 한다.
라마크리슈나에게 모든 종교는 절대자(The Absolute)에 이르는 여러 가지의 길을 의미한다. 이전 글에서 이미 소개한 대로 라마크리슈나의 제자인 비베카난다가 1893년 시카코에서 열린 세계종교자대회에서 참석해서 그의 스승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설을 하고 기립박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비베카난다에 의해 라마크리슈나의 사상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고 교단이 형성되어 꾸준히 발전되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라마크리슈나 교단은 남녀교단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데 이것도 비베카난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간디의 비폭력 사상과 라마크리슈나의 종교 간의 화합과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사상이야 말로 핵시대에 인류문화가 파멸하지 않고 살아남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위해 인류가 취해야 할 태도이며 정신이라 말한 바 있다.
라마크리슈나 사상의 영향은 이후 오르빈도와 시바난다를 비롯하여 앞에서 언급한 현대 베단타사상가와 수행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사상은 전통 베단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현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보다 절실하게 베단타사상과 수행문화를 적절히 해석해 내고 활성화하면서 그 가치와 중요성을 잘 드러낸 것으로 현대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사실 그들이야 말로 인도의 영성문화와 수행문화를 시대에 맞게 잘 소화해서 대중화하고 세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다.
현대 베단타 사상의 주요흐름을 형성해 온 라마크리슈나의 제자인 비베카난다를 비롯하여 오르빈도와 시바난다, 크리슈나무르티와 오쇼 모두 영어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로 인해 서구권 제자들이 많았고 강의나 출판물들이 영어로 많이 이루어져 서구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요가가 세계적 표풀리즘에 크게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