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바탐방 오인환 교육센터 개관식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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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바탐방 오인환 교육센터 개관식 날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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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고 박청수 원로교무

어느덧 캄보디아를 돕기 시작한지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러 개인적으로 깊은 감회에 젖습니다.


저는 1988년 MRA세계대회에 참석했던 웽 모리스씨의 강연을 통해 캄보디아의 비참한 참상을 처음 듣고 그 당시 1백만 원으로 캄보디아 돕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캄보디아를 직접 도울 방법이 없어 스위스 MRA를 통해 캄보디아의 난민을 도왔습니다.


그러다 1994년 11월 어느 날 밤 자신을 캄보디아 사람이라고 소개한 손 수베르씨의 전화를 받고 다음날 그분을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당시 캄보디아 국회부의장으로 캄보디아는 지금 고아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며 고아원을 세워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하루사이로 3만달러를 마련하여 그 돈으로 프놈펜 근교 스레암펠에 고아원을 설립했습니다.


그 후로는 할로재단을 통해 땅에 묻힌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모금을 했고, 11만 달러(9천7백48만8천원)를 영국 할로재단에 보냈습니다. 온 국민의 수보다 지뢰가 더 많이 묻혔다는 위험한 땅 캄보디아에서 사람의 생명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지뢰제거의 일에 일천정성을 바쳤습니다.


또한 평소 걱정이었던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7년에 바탐방과 씨엠랩 지역의 74개 마을에 우물을 파고 식수펌프를 묻어 마실 물을 공급했습니다. 그때 손 수베르씨는 사람과 짐승도 함께 물을 마시고 그 물로 농사도 지을 수 있는 작은 저수지 2개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손 수베르씨 청을 받아들여 2개의 작은 댐을 만드는 일을 했고, 그 일을 끝으로 저는 이 나라의 물 걱정을 마쳤습니다. 또 손 수베르씨가 운영하는 바탐방 고아원의 50여명 고아들 식비도 5년간 지원했습니다.


특히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은 일은 1994년 스위스 MRA에서 캄보디아 평화원탁회의가 열린 일입니다. 캄보디아에서는 마하 고사난다스님을 비롯 외무부 장관이던 시리부드 왕자와 4대 정파 지도자들이 그 곳에 왔고 세계 MRA지도자들은 캄보디아 대표들과 함께 캄보디아 평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내가 지원한 성금의 도움으로 프랑스 등으로 망명한 캄보디아 난민들도 많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 때 그곳에서 열린 원탁회의가 이 나라 정치발전의 화합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원불교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유익을 주는 실천불교입니다. 나는 전통적으로 소승불교국가인 캄보디아에 한국의 새 종교 원불교의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여 2002년 원불교의 젊은 여성교역자 최지운 교무와 정승원 두 교무를 캄보디아 바탐방으로 보냈습니다.


이곳에 온지 7년이 된 최지운 교무님은 원불교 교전을 크메르어로 번역하고 젊은 청년들에게 크메르어로 설법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캄보디아에 전해진 원불교가 장차 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스리랑카 등 소승불교로 전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2003년 3월 이곳에 원불교 법당을 세울 때 이곳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무료 구제병원도 함께 세웠습니다. 원불교 강남교당 교도님들의 후원으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과 병원 운영비는 모두 강남교당 교도님들이 중심이 되고 청수나눔실천회 회원들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간 의사선생님과 관계자들이 합심 협력하여 진료 받은 환자가 8만명이 넘습니다. 특히 원불교에서 세운 원광대학교 의료봉사단이 와서 양방, 한방으로 이곳 주민들에게 인술 보시를 하는 은혜도 힘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병원까지 멀어서 오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국경지대인 뽀이뺏까지 이동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최 교무님이 이곳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더 큰 원력으로 무료 구제병원과 오인환 교육센터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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